[아츠앤컬쳐] 자코모 푸치니가 남긴 주옥같은 아리아로 너무나 유명한 오페라 <라보엠>이 또 한 번 파리의 바스티유 국립오페라 극장 무대에 올려져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19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이 담겨 있는 스토리는 지금 보아도 고루하지 않다. 낡고 허름한 다락방에서 첫 장면이 시작되는데 총 4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는 1896년에 토리노에서 초연되었다.
극의 스토리는 프랑스의 시인 앙리 뮈르제(Henry Mürger)가 신문에 연재한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에 기초하는데, 파리에서 발행되던 신문인 ‘르 코르세르(Le Corsaire)’에 연속극처럼 1845년부터 1849년까지 인기리에 연재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앙리 뮈르제는 프랑스 본명을 필명으로 스펠링만 살짝 바꾸어 앙리(Henri)를 영국식으로 ‘헨리(Henry)’로 뮈르제는 ‘유(u)’에 움라우트(ü)를 넣어 독일 성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파리 문학계에서 유행했던 현상으로 아마 그 시절에도 국제화 ‘글로벌 바람’이 불었었나 보다.
푸치니의 오페라에서 원작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여느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이탈리아식으로 표기되었다. 로돌프(Rodolphe)가 로돌포(Rodolfo)로 마르셀(Marcel)이 마르첼로(Marcello)로 바뀐 것이다. 보엠(bohème)이란 보헤미안을 뜻하며 사회적인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어쩌면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과 더불어 이와 상반되게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본능적 욕구와 꿈을 좇고 싶은 희망이 동시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기운은 오페라의 배경인 1830년대 파리에서 팽배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프랑스 대혁명(1789~1794) 이후로 1839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났으니, 당시의 불안정한 시대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830년 7월 혁명은 혁명 이후 복권한 샤를 10세 왕정을 타도하여 프랑스의 대표적인 왕조인 부르봉 왕조가 몰락하게 된 사건이다. 이후 1848년에 2월 혁명이 일어나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하여 ‘제2공화국’이 되기 전까지 프랑스는 ‘7월 왕정’ 하에 통치된다. 이처럼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갈망했을까?
첫 무대는 크리스마스이브로 시작된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다락방의 기온은 차디차다. 화가 마르첼로와 시인 로돌포는 추위를 이겨가며 창작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다 너무 추운데 땔감은 없고, 하는 수 없이 걸작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원고를 난로에 넣고 몸을 겨우 녹인다. 그때 작업실에서 함께 살고 있는 철학자 콜리네와 뮤지션 쇼나르가 들어 온다. 쇼나르가 벌어온 음식물로 잠시 흥겨운 분위기가 감돌았던 작업실에는 이내 밀린 방세를 받으러 온 브누아의 등장으로 현실의 벽에 다시 부딪힌다. 친구들은 밤거리로 나가고 로돌포는 밀린 원고를 마치려고 남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아래층의 재봉사 아가씨 미미가 촛불을 빌리러 온다. 폐가 좋지 않은 그녀가 겨우 올라와 현기증으로 힘들어하자, 로돌포는 와인을 권한다. 그리고 그녀는 촛불을 얻어 돌아가려는데 바람이 불어 불이 꺼지고, 어두운 방에서 두 사람의 손이 닿자 흠칫하는 그녀에게 로돌포는 <그대의 찬 손>을 부른다. 그리고 미미는 유명한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로 답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이어질까?
2막은 파리의 라틴 구역에 위치한 카페 모뮈스(Café Momus)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예술가 친구들 4총사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흥겹다. 그러던 중 마르첼로의 옛 애인인 무제타가 돈 많은 알친도르와 함께 등장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무제타의 왈츠>로 그녀는 마르첼로의 환심을 사려 한다. 이후 3막에서, 로돌포는 환자인 미미가 가난한 시인과 살다가는 병도 못 고치고 죽을 것이라며 그녀와의 이별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 있으오. 내게 사랑을 일깨워준 이여>를 부른다. 마지막 4막에서는 두 남자 주인공은 무제타와 미미가 화려한 차림새로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2중창으로 <이제 미미는 돌아오지 않는다>를 부른다. 하지만 두 여인 모두 가난한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찾아온다. 그리고 미미는 결국 그의 곁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가슴 아픈 사랑과 현실의 냉혹함이 보헤미안들의 삶에 녹아들어 <라보엠>은 슬프지만 낭만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의 파리에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등 젊은 화가들이 몽마르트 언덕에 모여들었으며 카페에서 문인들과 열띤 토론을 하고 뮤지션들과 서로의 예술관을 나누면서 창작이라는 꿈을 불태우며 현실의 냉혹함을 이겨냈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