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한국의 단색화, 당당히 파리화단의 정상에 서다.” 그렇다. 그동안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높게만 느껴졌던 파리 화단에 한국미술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파리 최고의 갤러리라고 할 수 있는 패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박서보 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서보 작가의 이번 파리 전시는 그동안 선보였던 크고 작은 젊은 작가들의 전시와 고미술 전시를 하나의 축으로 연결하는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박서보의 <묘법(Ecriture)> 전시는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집약되어 있는 파리의 마레 지구에 위치한 패로탱 갤러리의 본관 전시장을 모두 채운 대형 기획전이다. 김용대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1974년부터 2014년에 걸친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이 조성되었다.
단아함, 화사함, 진지함을 담은 높은 정신이 서린 박 화백의 작품은 프랑스 관람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냈다. 전시장 벽면에 바로 걸지 않고 일정 간격을 두고 설치하여 작품의 입체감을 잘 드러냈다. 이를 보고자 하는 관람객들은 작품을 앞에서 한 번 보고 작품에 바짝 다가가서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보는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관람 자세를 보였다.
1931년 경북 예천 출생인 박서보는 1961년에 처음으로 파리에 왔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유네스코가 주최한 세계의 젊은 작가전에 초청된 박서보는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전시가 연기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시가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담은 우편물을 받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후 박서보는 몇 달간 파리에 체류하면서 파리 미술계의 흐름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파리 미술계에는 정신이 살아있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1년간의 파리 체류와 1963년 파리 비엔날레 전시 참가는 그의 작품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2014년에 파리를 다시 찾은 박 화백으로서는 그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한국미술에 대한 자부심과 작가로서의 고집이 보통이 아닌 그가 근 50여 년 만에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인 패로탱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니 그간의 오랜 갈증이 해소되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대한 파리 미술관계자들의 관심도 남다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르몽드(Le Monde)’의 미술 평론가이자 파리 1대학 교수인 필립 다정(Philippe Dagen)은 지난 9월에 이미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언급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미술계 관계자들이 많이 읽는 격주로 발행되는 미술잡지인 ‘르 주르날 데자르(Le Journal des Arts)’도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미술전문 기자인 프레데릭 보네(Frédéric Bonnet)는 박서보의 “반복적인 작업 행위가 그를 자유케 한다”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묘법’을 추상적 언어가 발전된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박서보의 작품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성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표현했다. 더불어 작품 표면의 돌출된 부분과 평평한 부분이 다른 공간의 대립이 아닌지 박 화백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하여 박서보는 이는 대립구조가 아니라 호흡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외부를 향해 열린 창이나, 정신적 해방구처럼 환기를 위한 것이라면서 ‘여백의 미’를 표현하였다.
한편, 1960년대 미국의 미니멀리즘에서 영향을 받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서보는 단호히 부인했다. 그는 1960년대 초에 외국 서적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면서 처음 미국 미니멀리즘을 접한 것은 1960년대 말 또는 1970년대 초라고 회고했다. 박 화백은 오히려 미국 작가들이 한국미술을 모방한 줄 알았다면서, 이후 두 미술 흐름의 개념이 현저히 다름을 이해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의 미술은 지극히 논리적인 것에 기초하는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정신적인 산물이며 삶을 깊이 있게 통찰한 예술성을 강조하였다.
최근 파리의 퐁피두미술관에서는 ‘현대 미술의 복수성’이라는 테마로 상설전시장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이를 계기로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현대미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전시장 전면에 소개하는 등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어 혁신적 변화를 주려는 취지를 미술관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과거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이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각각 성장하여 개별적으로 연구되었으나, 20세기 들어 그 경계는 불분명해졌다. 더불어 일방적인 한쪽의 영향이나 지배가 아닌 상호 교류를 통한 차별성을 지닌 각각의 예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풍요로운 국제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동서양의 현대미술사를 하나의 세계지도에 공존시켜 서로의 차별성과 중요성을 명시하려는 움직임이 프랑스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런 시기에 박서보의 파리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명확한 입지를 세계미술사에 자리매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할 것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활약해 온 백남준, 이우환과 더불어 세계 속의 한국 작가로서 박서보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이자 한국 미술계 파워 1위인 박서보에 대한 프랑스 미술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 관장들은 물론 현지의 저명한 평론가들이 보인 이번 2014년 파리 패로탱 갤러리의 박서보 전시에 대한 호의가 예사롭지 않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