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ie-Noëlle Robert - Théâtre du Châtelet
© Marie-Noëlle Robert - Théâtre du Châtelet

 

[아츠앤컬쳐] <왕과 나>라는 작품은 우리에게 영화로 더 친숙하다. 1956년에 월터 랭 감독이 만든 이 영화에는 데버러 커와 율 브리너가 출연해서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더불어 1999년에는 주윤발과 조디 포스터 주연의 <안나와 왕>이라는 영화로 색다르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상 영화이전에 <왕과 나>라는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1951년에 먼저 발표되었다.

뮤지컬 <왕과 나>는 1944년에 발표된 미국작가인 마가렛 란든의 책 <안나와 시암의 왕>을 바탕으로 창작된 것이다. 이 소설은 18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암의 몽꿋 국왕의 영국인 영어교사 안나 레오노웬스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반면, 태국에서는 역사적인 부정확성을 근거로 이 작품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 Marie-Noëlle Robert - Théâtre du Châte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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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와 헤머스타인의 다섯 번째 작품인 뮤지컬 <왕과 나>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1951년 3월 29일에 초연되었다.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헤머스타인은 <사운드 오브 뮤직>과 <캐러셀> 등으로 잘 알려진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맹활약한 미국 뮤지컬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곡가와 작사가이다.

흔히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뮤지컬의 황금기, 또는 제2의 황금기라고 한다. 당시 뮤지컬은 2차 대전 후 오랜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주어 많은 사랑을 받으며 발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시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대중적인 인기를 넘어서 독자적인 예술성을 확립하였다.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 화제를 모은 것은 캐스팅이다. 시암의 몽꿋 국왕역에는 프랑스 배우 랑베르 윌슨(Lambert Wilson)이, 영어 교사인 안나역에는 미국인 메조소프라노인 수잔 그레이엄(Susan Graham)이 열연하였다. 완벽한 음악성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현재 가장 명성과 인기가 높은 여자 성악가 중 한 명인 수잔은 역시 탁월하다는 찬사를 받으며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한편, 랑베르 윌슨은 영화, 연극, 뮤지컬, 광고 등 다양한 범주를 넘나드는 미남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극 연출가로서도 재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러한 랑베르 윌슨의 캐스팅에 프랑스 언론들은 노래와 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카멜레온과 같은 배우라며 공연 전부터 많은 기대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올해 칸영화제 사회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한 때, 성악가를 꿈꿨던 적도 있어요. 바깔로레아(프랑스 대학수학능력시험)를 마치고 런던에서 3년간 유학을 했어요. 드라마 센터에서 미국 뮤지컬은 물론 클래식 음악과 무용을 배웠어요. 하지만 뮤지컬에서 가수로서 제 음색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너무 오페라적인 성격이 강하거나 너무 대중가요적인 요소가 강한 것은 제외하고 그 중간 정도에서 저한테 맞는 것을 찾았죠. 이번 <왕과 나>의 왕역은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연극적인 요소가 훨씬 까다롭게 요구되죠. 아주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을 표현해야 하죠. 권위적이며 남성우월적인 왕이지만 동시에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줘야 하죠. 아이처럼 순수하고 경쾌한 면도 잘 표현해야 하고… 모순과 딜레마를 지닌 복합적인 인물이죠.”

연출자 리 블레이클리(Lee Blakeley)는 샤틀레 극장 대표인 장 뤽 쇼플랭(Jean-Luc Choplin)이 <왕과 나>의 연출을 제안했을 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그는 이 스토리를 미완의 사랑이야기라고 묘사한다. 안나와 왕은 충분히 한 쌍의 멋진 커플로 거듭날 수 있었지만 수많은 요소들이 장애물이 되었다. 영국여인인 안나는 시암의 왕을 자신이 받은 빅토리안 교육과 문화의 잣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자 마음을 열면서 이야기는 흥미롭게 전개된다.

극 중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그 누구도 왕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안 되기에, 낮출 때까지 낮추다가 바닥에 엎드리기까지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충돌은 비단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두 사람만이 겪는 갈등은 아닐 것이다.

글 이화행 아츠앤컬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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