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부터 힙합까지 현대사회를 해학적으로 스케치
[아츠앤컬쳐] 프랑스에서 현대무용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장소인 파리 샤이오국립극장(Théâtre national de Chaillot)에서 발레가 아닌 현대무용 돈키호테를 선보였다. 공연명은 <트로카데로의 돈키호테(Don Quichotte du Trocadéro)>이며 안무가는 조제 몽탈보(José Montalvo)이다.
파리에 와본 사람이라면 트로카데로를 기억할 것이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라서 사진을 찍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트로카데로 광장을 방문하는데, 일전에 한국을 빛낸 가수 싸이가 파리에 왔을 때도 이곳에서 공연을 하였다. 샤이오 국립극장과 해양박물관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넓은 광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곳은 서커스, 힙합공연의 열린 무대로는 물론 자유와 권리를 외치는 시위의 장소로도 쓰인다. 올해 6월에도 이곳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가 있었다. 이처럼 시민들의 열린 공간으로써 트로카데로 광장은 이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은 장소이기도 하다.
스페인계 프랑스 안무가인 조제 몽탈보(José Montalvo)는 경계를 허무는 대중친화적인 안무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사를 공부했던 그는 무용으로 진로를 전향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샤이오국립극장 무용감독으로 역임하였고, 2008년부터는 도미니크 에르비유(Dominique Hervieu)와 함께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81년 무용수업시간이었는데 이후 그녀는 몽탈보의 공연에 여주인공이 되었다. 1988년에는 두 사람이 몽탈보-에르비유 무용단(Compagnie Montalvo-Hervieu)을 창설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프랑스 현대무용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어린이들에게는 돈키호테는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하죠. 돈키호테가 그려진 연필과 냅킨, 재떨이를 못 보고 자란 사람은 없죠. 나의 경우 어릴 적 할머니께서 돈키호테 책을 읽어주셨는데, 그때 웃었던 즐거운 기억들을 절대로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번 안무에는 첫 번째 무용 레슨 시간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도 담았지요.”
몽탈보는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문학적 줄거리 위주로 풀어나가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연극적 요소를 강조하여 마치 서커스와 무용의 경계를 허문 그 만의 안무로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또한, 무용 ‘돈키호테’ 하면 1869년에 탄생한 발레를 연상하기 쉬운데, 두 작품은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과거 한국의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 중에 봉숭아학당(?)이 떠오른다. 학교의 풍경을 해학적으로 스케치하며 관객들과 호흡하며 웃음을 선사했던 코미디 프로였는데 몽탈보의 돈키호테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안무가인 몽탈보가 인터뷰를 통해 얘기했던 것처럼 무용 레슨 첫 번째 시간이 연상된다. 학생들은 힙합, 에어로빅, 서커스, 발레, 플라멩코 제각기 자신들의 장기를 뽐내는데 너무나 아마추어 같은 몸짓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때로는 놀라운 신체적인 기량에 감탄하기도 한다.
무대미술을 보면 그 배경이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제한되지 않았다. 영상 프로젝트를 활용하여 무대 위에 거대한 풍차가 등장하기도 한다. 파란 하늘에 풍차는 자유자재로 그 모습이 변화한다. 이러한 과장과 해학적인 요소를 보면 17세기에 발표되었던 원작인 소설에 충실했다. 한편 파리의 지하철역인 메트로 풍경도 여러 번 등장한다.
2011년에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스’를 보았는데, 파리의 우아했던 시절과 시크한 모습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전형적인 미국인들이 지닌 판타지를 스케치했다면, 이번 몽탈보의 트로카데로는 그 이편의 모습을 담았다. 파리는 세계의 그 어느 도시보다 이민족이 많은 다문화도시이다. 이로 인한 문화적 풍요로움과 더불어 동반되는 크고 작은 사회적인 문제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소외계층의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해방구를 찾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한다. 시내의 광장이나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힙합댄스를 추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몽탈보가 우회적으로 제시하는 돈키호테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각자의 길을 가는 돈키호테와 산초가 퍽 친근하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