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VEA CREME

 

[아츠앤컬쳐] 나는 독일 제품을 좋아한다. 더 자세히 표현하면 광적일 정도로 추앙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독일 브랜드라고 하면 무조건 믿고 사용하는데, 어느 나라 제품인지 신경 쓰지 않고 사용했다가도 품질이 좋아 국적을 따져보면 제조국이 독일인 경우가 많다. 그중에 하나인 니베아 크림은 내가 좋아하는 삼박자를 모두 갖춰 여고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는 아이템이다. 크림 용기 색상, 용기 재질 그리고 크림의 질감과 향, 품질! 모두 좋다.

선명한 블루컬러의 알루미늄 메탈 용기는 그냥 바라만 봐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청명하고 맑은 하늘을 연상케 하고 깊고 푸른 태평양 바다도 떠올리게 한다. 플라스틱 용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알루미늄 메탈 용기는 아주 가볍고 위생적인 느낌을 준다. 사용하는 동안 여기저기 부딪혀서 찌그러지고 살짝 움푹 패인 파란 통은 더 빈
티지한 멋을 풍기고 운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뚜껑을 열면 코로 전해져오는 허브 아닌 허브향기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이 향기는 고3 시절 학교에서 밤늦도록 공부하다 졸려 찬물로 세수하고 난 후 얼굴에 니베아를 바르면서 올려다본 밤하늘 별과 밤공기까지 추억하게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그때를 기억하려 뚜껑을 열어 코를 킁킁대며 향기를 맡는다. 나에겐 마약보다 더 중독성 높은 향이다.

그리고 눈보다 더 하얀 크림 제형, 영양크림이라고 하기보다는 손가락으로 푹 떠서 입에 넣고 싶은 부드러운 생크림 같다. 마치 나를 위해 오더메이드 한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마음에 든다. 외적인 것에 먼저 이끌려 니베아를 처음 쓰게 되었다면 30년 가까이 니베아를 써오게 하는 힘은 독일인이 만든 크림 본연의 품질 때문이다.

니베아를 처음 사용한 건 여고생 때다. 엄마 화장대에서 본 어른들 화장품이 욕심이 났지만 어른 특유의 화장품 향기가 왠지 싫었다. 10대인 내 얼굴에 독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것저것 찾다 블루컬러통의 니베아를 발견했다. 블루 색상에 빠져있던 나에게 니베아의 파란통은 다른 화장품을 볼 이유를 없게 했다. 한창 헤르만 헷세
의 <데미안>과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필집에 빠져 삶이 주는 회의와 무거움에 철학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던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에게 블루컬러는 생각하는 컬러고 가볍지 않고 진지한 컬러이며 냉정하고 차가운 지성인의 컬러였다.

블루통을 보는 순간 선택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TV에서 한창 광고를 하니 품질이야 당연히 좋을 거라고 믿었다. 어쩌면 크림의 품질은 아예 생각조차 안했던 것 같다. 파란색통 하나면 충분했다. 그렇게 크림 품질이 아닌 블루색상 용기 때문에 니베아를 쓰기 시작했다. 약간 뻑뻑하게 발리는 질감이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면 금방 눈 녹듯이 피부 속으로 녹아 들어가 하루종일 피부를 건조하지 않게 해줬다. 한여름에도 찬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오로지 니베아 하나만 발랐다.

니베아 사랑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26살 처음 방송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얼굴에는 니베아만 바르고 다녔다. 화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초 제품을 하나둘씩 마련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니베아는 손 전용 크림으로 그 역할을 달리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다. 가끔은 쓰던 영양크림이 떨어지면 니베아 크림을 얼굴에 바르
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에서 실시한 재밌는 연구 결과를 보게 됐다. 고가의 피부 재생 크림으로 소문난 A브랜드 크림과 니베아 크림을 4주간 얼굴 피부 테스트한 결과 피부 주름 관리에 니베아 크림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가격은 10배나 차이가 나는데 말이다. 그 결과를 보고 이거 혹시 조작한 거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지만 나의 발걸음은 이미 편의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니베아 크림이 생산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지나친 망상에 몇 주간 동네 편의점이란 편의점은 다 돌면서 니베아 파란통 크림을 사 모았다.

외국 출장이나 여행길에 니베아 크림이 보이기라도 하면 주저하지 않고 구입했다. 유럽 가면 명품 가방이나 시계를 사올 거라고 추측하고 나에게 질문했던 어느 잡지사 여기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니베아를 사오신다구요? 명품 가방이나 화장품이 아니구요?”

겨우 몇 유로밖에 하지 않는 니베아 크림을 수십 개 사서 혹시 트렁크 안에서 찌그러지기라도 할까 봐 옷으로 싸고 또 싸고 하는 나를 보던 후배는 참 흥미롭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실시한 실험결과가 사실이라면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내 동안 비결은 몇천 원짜리 니베아 크림일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리! 하고 대답하면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니베아 크림은 여자의 가장 황금기라고 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내 얼굴을 지켜준 아름다운 기억이고 추억의 아이템이다. 물론 지금도 화장품 파우치에 항상 동행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크림이기도 하다.

니베아 제품을 만든 바이어스도르프(Beiersdorf)는 1911년에 세계 최초로 유화제를 개발한 독일의 화장품 회사다. 물과 기름을 안정적으로 결합시킨 유화제는 오늘날 모든 화장품의 기초가 될 정도로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블루틴(Blue Tin)’으로 유명한 니베아 크림 또한 이를 기반으로 1912년에 출시되었는데, 제품의 내용물 색에서 착안하여 ‘눈처럼 하얀’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니비우스(Nivius)에서 이름을 따왔다.

원래 니베아는 여성 전용 크림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우아하고 고상한 여성미의 기준이 활동적이고 건강한 이미지로 변화되자 1925년에 아르누보 풍의 문양이 있는 크림통을 장식 없는 파란색으로 바꾸었고 고전적인 필기체 로고타입도 모던한 서체로 바뀌었다. 여성 전용 크림으로 출발한 니베아는 이제 남녀 구분 없이 온 가족이 사용하는 건강한 피부 관리의 가장 친근한 아이템으로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유난희
명품 전문 쇼호스트, 저서 <명품 골라주는 여자>,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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