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영국 유리공예작가 Luke Jerram(루크 제름)을 만나기 위해 맨체스터에 왔다. 그의 전시회 오프닝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는 감기 바이러스를 유리 조각품으로 제작한다. 인간의 인체 내에 존재한다면 만병의 원인이 될 법한 흉측한 존재들일 테지만 그의 작품은 보석과도 같이 아름답다.
런던에 도착하여 3시간쯤 공항에서 대기하고는 바로 맨체스터로 왔다. 밤 11시 반 호텔 도착. 18시간의 비행에 고단했다. 오전에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주변을 거닐었다. 맨체스터는 오묘한 감성의 도시이다. 장식성이 전혀 없는 정직한 붉은 벽돌 건물들. 매력 있다. 그저 존재 자체의 실용성과 건실함만을 중히 여긴듯한 두텁고 덩어리가 큰 건물들. 웨어하우스들이 곳곳에 있다. 일층 넓은 윈도를 통해 보이는 하얀 와이셔츠의 사람들은 빼곡한 책상들 사이에서 분주하다.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 무언가 산업을 일구어내고 있으리라. 산업의 도시. 미팅이 끝나고 루크는 맥주를 한잔하며 맨체스터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전에 공장이었던 건물들은 호텔로 사무실 건물들로 변모하였다 한다. 머물고 있는 호텔도 그런 곳 중 하나인듯했다. 어두운 화장하지 않은 벌거벗은 벽돌 공간에 7개의 케이스 안에 전시된 그의 투명한 무색의 작품들이 빛을 발한다. 그의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분명 바이러스들은 무채색일 텐데 과학에서 사용되어지는 이미지들은 색을 지니었다. 왜 이들에게 빛과 색을 가상으로 포함시키는가에 대한, 바이러스의 실제 크기에 대한 의문들은 감기바이러스 시리즈를 낳게 하였다.
실제와 보는 이의 관점과 과학자들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이미지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고 루크는 바이러스들을 직접 만들어 조각품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사이언스 잡지와 학회에서 이슈화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고, 바이러스 이미지 자료로 현재에도 널리 활용된다. 20~30cm 정도의 그의 바이러스 작품들은 실제의 바이러스보다 1,000,000배가 더 큰 크기라고 하니 바이러스가 얼마나 미세한 크기인지 짐작이 된다. 나의 관심은 실은 과학적 시각에서의 그의 작품이 아닌 미학적 시각이다.
공예의 아름다움은 그 고유의 물성과 인간의 손맛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유리라는 소재가 주는 질감. 사람에 의해 재탄생되어진 작품은 흉물스럽게 묘사되어지는 감기 바이러스를 미로 승화시켰다. 조명과 만나서 완성되어지는 작품은 그 담고 있는 내용을 떠나서 아름답다. 유리장인들은 이 섬세한 작업을 하기 위해 새로운 공법을 연구하고 그렇게 완벽하게 재현되어진 작은 보석은 미술관에서 전시된다. 보는 사람들은 이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며 무엇을 느낄까?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이미지로 승화시키는 지는 작가의 몫이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미술작품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작품, 아이러니한 작품들, 아름다운 작품들… 각자 어떤 역할과 의미를 담고 세상에 나왔을 텐데 루크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생각해본다. 제목이 없었다면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그저 추상적인 아름다운 작품이다. 바이러스라는 소재는 거부반응과 관심이 공존하게 한다. 작품과 과학의 영역과의 소통을 열어주고, 우리에게 또 다른 영역의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원하지만 스토리가 없는 것은 식상하기가 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는 루크는 생각보다 소탈하고 경쾌한 사람이었다. 그의 프로젝트 매니저와 함께였다. 전시내용, 작품 선정, 운송, 설치공법 등에 관해 상의한 후 그가 하는 피아노 프로젝트에 관해 담소를 나누었다. ‘Play me, I’m yours!’라는 엉뚱하고도 흥미로운 비영리 공공프로젝트이다. 단기간 동안 선정된 도시 곳곳에 지역 작가들이 꾸민 피아노를 설치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언제나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자신이 연주하거나 퍼포먼스 한 내용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서 직접 올릴 수 있는 사이트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의 해프닝을 관람할 수 있다. 공원이나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이 아마추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도시 속에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해프닝이라 더욱 흥미롭다. 뉴욕 워싱턴스퀘어 파크에서는 일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재즈를 연주하고 북을 치고 춤을 춘다. 아주 가끔은 피아노를 들고 나와서 연주한다. 서울의 곳곳 - 한강둔치에서, 광화문 앞에서, 가로수길에서, 도시의 작은 공원들에서 피아노가 설치되어있다면 어떤 해프닝이 일어날까?
루크의 삶은 예술을 통해 여행과 해프닝, 소통을 일구어 나간다. 자신의 작은 생각을 이야기들을 담아 만들어낸 섬세하고 작은 조각품을 통해, 거대한 설치작품을 통해, 엉뚱한 해프닝 프로젝트들을 통해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즐거워하는 그 모습들을 나
누고 즐긴다.
글 | 장신정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