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살아있는 전통, 창의적이고 보편적인 현대성은 작가가 놓쳐서는 안 되는 화두입니다. 이 둘은 새의 양 날개와 같습니다. 전통과 현대성이라는 두 날개로 균형을 잡아 나아갈 때 바람직하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글

이른 아침 경주 여행을 위해 오랜만에 서울역에 왔다. 기차역은 공항과는 다른 맛이 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친구들과 춘천 여행을 가던 그 설렘의 여운이 남아있다. 삶은 달걀과 바나나 우유를 사들고는 기차여행의 준비가 완료된 듯 왠지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윤광조 작가님의 작업실은 경주 기차역에서 50분 거리 깊은 산기슭에 위치한다. 옥산서원을 향해 한참 산길을 달린다. 대나무 울타리 집이 보이는 듯, 하얀 머리를 질끈 묶으신 맑은 얼굴의 윤광조 작가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분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한국 분청전에서 처음 만났었다. 작가님을 뵙기는 처음이었다. 분청사기의 대가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신 분이시라 그분의 향기가, 삶의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먼 길에 고생했다 하시며 먼저 생활공간으로 맞이하셨다. 두 사람이 식사하기에 단아하고 편안한 좌식테이블에는 이미 테이블 세팅이 되어있었다. 먼 길 온 손님을 위해 이리도 따뜻하게 대접을 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모처럼의 여유를 한껏 만끽하였다.

두 분은 서로 참으로 존경하고 존중하시는 느낌, 귀하게 가꾸어진 인연이신 듯하여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식탁에서 만난 사모님의 도자기는 윤광조 선생님 작품과는 참으로 달랐다.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절제미와 성숙미가 담겨있었다. 그분의 작품이, 성품이 감동을 주어 그분의 그릇을 가지고 싶다. 닮고 싶다 생각했다.

공예가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다. 공예 전시를 기획하면서 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던 터였다. 여념 없이 물성을 말씀하신다. 흙과 작가의 손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교감을 나누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신다. 윤광조 선생님은 작업장에 어시스트가 없다. 작업실 정리며 청소까지 손수 하신다. 술을 좋아하시고 예와 멋을 깊이 느끼신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선생님의 작품은 천진하면서 기품이 있다.

사람의 손맛과 작가 내면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의 백토분청 작품은 태토 위에 부분 또는 전면적으로 백토를 발라 작품 표면의 맛을 낸다. 타래 쌓기 또는 흙을 밟고 주물러 판을 만들어 도자를 빚어낸다. 그의 작품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미술관,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여 년 전에 세속과 멀리 떨어진 경주 산골에 손수 지으신 작업장으로 이사하셨다. 작업장에는 큰 유리가 있어 밖의 시골 풍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가만히 조용히 소리를 들어보라 하신다. 휭-휭- 바람 소리가 맴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라기보다는 소용돌이를 돌고 있는듯한 소리였다. 바람과도 같은 성품을 지니신 작가님이 바람골에 작업의 둥지를 트셨다니 참으로 멋들어진 여생을 보내고 계시지 아니한가.

선생님의 작품을 두루 보았다. 한껏 보았다. 오묘하게도 연세가 드시면서 더욱 작품에 힘이 넘치신다. 기운이 생동하고 있다. 작품은 야성성을 분출하고 있지 않은가? “선생님, 어찌 이러세요? 어찌 이리 더 작품에 기운이 터져 나오세요?” 아내가 계시고 세속과 멀리하시며 안정된 삶을 즐기시고 연세도 있으시니 여느 다른 작가들의 후반기 작업처럼 작품에 힘을 빼실 만도 할 터인데 놀랄 노릇이다. 더욱 남성성을 드러내시고 작업은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게 터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작품 앞에 서 있으면 선생님의 기운이 느껴진다. 한국의 그 소박한 듯 구성진 자연과도 닮은 오묘한 맛을 아직은 모를 법한 외국 미술비평가들도 윤광조 선생님의 작품을 느낀다. 교감한다.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으신 데는 문화를 넘어선 작품으로 전해지는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어서일 테다. 그가 자연을 느끼고바람을 벗 삼아 삶 그 차체를 ‘예’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흐드러지게 춤을 추고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글 | 장신정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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