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사과는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다. 이 사과를 가장 잘 그리는 화가를 꼽으라면 단연 으뜸은 윤병락이다. 그래서일까, 윤병락을 두고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라고도 부른다. 가을은 푸르른 생동감의 에너지가 농익은 결실로 응축되는 계절이다. 자연의 온 만물은 그 풍요로움에 살찌고, 깊은 사색의 여유에 잠들게 된다. 윤병락의 사과 그림에서 단순히 과일의 아름다운 자태 그 이상의 감흥을 받게 되는 이유도 가을 향이 주는 남다른 매력이다.
윤병락 작가가 처음부터 과일만 그린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사과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2003년 연말 이후며, 과일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2년도 접시 모양의 변형 캔버스와 함께이다. 그 이전엔 지금과는 다소 다른 전통적인 미학에 심취해 있었다. 물론 표현기법은 지금과 같은 극사실주의 화법이었다. 대학졸업 후 초기엔 낡고 퇴색된 옛 민속 기물에 주목했다. 시간의 훈장인 먼지가 곱게 내려앉은 기물들에서 남다른 삶의 정취를 보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러한 옛 민속 기물들을 통해 어머니세대와 긴밀한 교감을 나누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사과작가’로 통하는 지금의 윤병락에게 과일은 이전 작품들의 주요 소재였던 옛 기물들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이전의 소재들이 일상생활의 온기가 고스란히 밴 어머니의 기억이었다면, 사과를 비롯한 과일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자 기억일 것이다. 윤병락에게 ‘사과란 어떤 의미인가?’를 물으니, 망설임 없이 ‘고향’이라고 답한다. 그 짧은 ‘고향’이란 단어만큼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윤병락은 사과를 왜 고향이라고 했을까?
마침 윤병락의 고향은 천지에 사과밭이 널린 경북 영천이다. 유년기부터 고등학교까지 자란 곳도 지척인 영주란다. 그렇게 사과는 이미 삶의 숙명처럼 세월을 함께 했다. 아버지께서도 포도과수원을 운영하시고 어머니께선 어린 자식의 교육을 위해 과일 행상도 마다치 않으셨다니, 윤병락에게 사과의 의미가 남다르겠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렇듯 종종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 작가가 살아온 뒷얘기가 큰 도움이 된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 버찌, 오렌지, 수박…. 윤병락 작가가 즐겨 그려온 온갖 과일들에서 하나같이 진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그 안에 삶에 대한 진정성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전업작가인 윤병락의 일과는 정말 단순하다.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작업실에서 보낸다. 잠자는 시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에 할애한다. 줄선 일정을 감당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국내외 아트페어와 기획전, 유수의 아트옥션과 갤러리의 러브콜이 이어진다. 사과 향 물씬 풍기는 가을의 초입, 윤병락의 사과를 통해 행복한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가을향기가 농익어갈수록 태양을 닮은 윤병락의 사과는 더욱 빛을 발한다.
작가소개 ㅣ 윤병락
윤병락(1968~)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12회와 부스 개인전 10회를 가졌다. 그동안 부산아트쇼(부산 벡스코), 극사실회화-눈을 속이다(서울시립미술관), 물아심수전(서울 가나아트센터), 新오감도(서울시립미술관), 사물의 대화법(갤러리현대 강남), 2008 ‘그림좋다’전(서울 인사아트센터), 제5회 광주비엔날레 기념 실존과 허상전(광주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글 ㅣ 김윤섭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수료. 현재 미술평론가로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및 울산대 미술대학 객원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