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질의 애무에 살 오른 욕망의 기둥

Cactus No.71, 캔버스에 유채, 107.5×145.5cm, 2011
Cactus No.71, 캔버스에 유채, 107.5×145.5cm, 2011

 

[아츠앤컬쳐] 얼핏 보면 일상적인 ‘정물 풍경’처럼 간단하고 쉽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그저 그런 사실적인 구상화는 결코 아니다. 굵고 곧게 솟은 선인장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도발적인 남근(男根)을 보는 듯하다. 그 섹슈얼적인 아우라는 미세한 신경까지 건드리며 숨 막히는 흡입력을 발산한다. 욕망의 끝은 본질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극사실회화기법으로 구현한 선인장은 잘 나온 증명사진처럼 ‘친절한 사실감’을 전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선인장을 작게는 수십 배, 크게는 수백 배를 뻥튀기했다.

Cactus No.57, 캔버스에 유채, 189.5×190cm, 2011
Cactus No.57, 캔버스에 유채, 189.5×190cm, 2011

 

마치 눈앞에서 선인장의 숨겨졌던 미세한 핏줄까지 보는 듯해 ‘거짓된 리얼리티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소재가 주는 친숙함과 동시에 너무나 거대해져 발산되는 전혀 다른 생경함을 함께 맛볼 수 있다. 너무나 흔하고 단순한 소재인 선인장을 ‘유화의 붓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소재’로 탈바꿈시켰다. 가장 큰 경쟁력이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깨우는 것이라면, 작가의 경우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조형어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3. Cactus No.69, 캔버스에 유, 1채62.1×130.3cm, 2011
3. Cactus No.69, 캔버스에 유, 1채62.1×130.3cm, 2011

 

이광호에게 선인장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일상적인 형상의 재현을 넘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선인장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이광호는 망설임 없이 “애무의 흔적”이라고 답한다. 그러고 보면 마치 그의 붓엔 혀가 달린 듯하다. 아주 미세한 실선들이 빠른 속도로 수없이 겹쳐 완성된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2. Cactuos. 6N1, 캔버스에 유채, 100×100cm, 2011
2. Cactuos. 6N1, 캔버스에 유채, 100×100cm, 2011

 

잭슨 폴록이 무심결에 페인트 통을 이리저리 흔들며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표현했다면, 이광호는 한술 더 떠서 자신의 미세한 혈관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낸 것 같다. 이는 부분적으로 유화가 마르기 전에 원터치 속필로 완성한 효과이다. 잭슨폴록이 무기교의 수필가라면, 이광호는 세밀한 지문까지 챙기는 시나리오 극작가이다. 상상해보라. 전광석화처럼 빠른 붓놀림으로 바늘 선만큼 가는 선들을 풀어낼 때의 손끝은 얼마나 에너지로 충만했겠는가.

6. Cactus No.65버, 캔스에 유채, 120×100cm, 2011
6. Cactus No.65버, 캔스에 유채, 120×100cm, 2011

 

그래서일까, 이광호의 그림에선 ‘무의식의 기묘한 에너지’가 발산하는 것이 감지된다. 그것은 그의 붓놀림이 곧 무의식 속에 잠들었던 욕망을 깨우는 의식이며, 그 욕망에게 바치기 위한 전희(前戱)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광호의 그림은 사랑에 대한 끝없는 욕망의 구애이고, 내면의 솔직한 감흥을 에너지로 시각화한 셈이다.

5. Cac tNuso.70, 캔버스에 유채, 162.1×130.3cm, 2011
5. Cac tNuso.70, 캔버스에 유채, 162.1×130.3cm, 2011

 

화가의 선호하는 색깔은 그 작가의 감성이나 심리상태를 밖으로 내비치기 마련이다. 이광호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붓질과 색의 배합은, 보는 이에 따라 서로 다른 화면의 질감을 선사한다. 클로즈업된 선인장을 활용한 화면구성이 워낙 독특하고, 천차만별 갖가지 선인장 종류의 특성에 따라 붓이나 붓질도 달라진다. 그것은 그의 그림이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양한 선인장이 지닌 고유의 개연성을 존중하고,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정하는 이광호의 붓질은, 곧 그 자신의 감성을 대변하는 것과 다름없다.

살아 있음, 살고 싶음, 욕망의 기쁨…. 이광호의 그림은 곧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까지 아우른다. 얼핏 보아선 너무나 견고한 형상으로 비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셀 수 없이 많은 실선이 뭉친 허상일 뿐이다. 손에 잡힐 듯하지만, 잡을 수 없는, 실상이면서 허상이고, 색(色)이면서 곧 공(空)이다.

그 사이에 그 존재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이광호의 그림에서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이나, 도가(道家)의 ‘무위(無爲, 무위자연)’ 이념까지 스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광호의 붓질 애무로 한껏 살 오른 욕망의 기둥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볼 것인가?

작가소개 ㅣ 이광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에서 판화전공으로 졸업했다. 그동안 8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2006 스페인 제3회 Castellon 국제회화 공모전 후보자 선정,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및 인기작가상, 2005~2006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 4기 입주작가, 2003 한국문화예술진흥 지원 전시기금, 1995 한국현대판화공모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포스코 등 다수가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 ㅣ 김윤섭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수료. 현재 미술평론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
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 및 전문위원, 대한적십
자사 레드크로스 편집자문위원,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및 울산대 미술대
학 객원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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