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 (Bernardo Bertolucci)
[아츠앤컬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성적, 정치적 차원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분열과 갈등에 대해 고민하는 이탈리아의 대표 영화감독이다. 그는 파솔리니를 영화의 아버지로 생각하며, 영화를 사회 구조를 탐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택하고 있다. 마르크스, 프로이드, 동양을 거친 그의 작품들은 현재 영화세대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체험과 현실인식에서 시작된 영화
한 기자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속의 현실과 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내 영화에서 시간은 꿈의 시간에 매우 가깝네. 영화는 모두 꿈과 거의 같은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네. 외부 시간을 잊게 해주는 떠도는 이야기들 말일세.”
베르톨루치가 그의 영화에서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유년기의 체험과 거기서 파생된 제압할 수 없는 순응, 그리고 그 이면에 나타나는 사회와 정치의 맥락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가 경험한 풍부한 인식의 여정을 드러내고 있다. 부르주아혁명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아버지의 존재에서 벗어나고자 회의하며, 대가들이 이루어놓은 영화의 위대함에 찬탄하며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영화에 담아낸다.
그러나 이런 욕망이 그의 작품에서 해체되자 그의 예리한 진보의식은 후퇴했다. 한동안 베르톨루치는 뚜렷한 자기의식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전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이은, 1960년대 이탈리안 네오시네마의 기수이자 동시대작가 장뤽 고다르에 견줄만한 영화사적 가치를 가진 감독이다.
내 영화는 모범답안을 피해 가는 것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아버지와 혁명가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지적인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화계에 들어오기 전에 시인으로 활동했었는데, 아버지의 명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영화감독으로 발길을 돌렸다. 베르톨루치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파솔리니를 찾아가 <아카토네>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얼마 후 자신이 쓴 시나리오 <냉혹한 살인자>로 영화감독에 데뷔해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베르톨루치의 전성기 영화들은 1968년 유럽 혁명을 정점으로 60년대 유럽의 정치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형식적 면에서는 관습을 파괴하고 주제 면에서는 체제에 순응하려는 의식과 내부에 잠재된 저항의식 사이의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런 경향은 2번째 작품이자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혁명전야>(1964)에서 잘 나타난다. 성적, 정치적인 차원에서 분열되고 갈등하는 주인공은 순응과 혁명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혁명전야>는 스탕달의 ‘파르마의 승원’을 각색했지만, 영화의 내용은 성과 정치의 관계에 더 기운다.
많은 작품들에서도 자주 반복되는 아버지에 대한 토템적 숭배라는 베르톨루치 특유의 주제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순응주의와 혁명적인 태도의 대립은 성(性)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단순한 일치는 없고 긴밀한 연관만 있을 뿐이다. 비평가들은 좌파 내에서의 정치적 감수성의 변화, 노스텔지어, 개혁의 갈망과 혼란에 관한 영화 중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다
고다르에 대한 회의
파시즘에 관심이 많았던 베르톨루치는 파시즘의 악마적인 본질보다는 당시의 모호함과 부패를 꼬집었다. 그는 ‘1960년대 영화의 찬란하고 불가피한 질병’ 나르시시즘과 결별하고 대중적인 대작을 만들기 위해 1970년과 1977년 사이에 파시즘에 관한 자신의 추억과 환각을 흘려놓고, 소설적이며 세련된 그러나 점점 더 과격해지는 3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나는 역사를 이용해 허위적인 역사영화를 만든다. 사실상 영화 표현방식으로는 진짜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영화는 현재만 알뿐이다. <거미의 계략>(1970)이나 <순응주의자>(1970)는 역사영화가 아니라 현재를 역사화 시키려는 영화다.” 1970년대 베르톨루치는 생애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릴만한 <순응주의자>와 <거미의 계략>을 동시에 발표한다. 레지스탕스 영웅이었던 타락한 아버지의 정체성을 알고 고민하는 아들의 이야기 <거미의 계략>은 내면적인 영화지만, 모라비아의 소설을 옮긴 <순응주의자>는 좀 더 소설적이고 역사적인 영화였다. 그의 영화는 점점 서사적으로 변했다.
고다르가 부르주아 영화산업의 배급망을 부정하고 비디오와 16밀리 카메라를 선택해 혁명영화의 길로 나갔을 때, 베르톨루치는 파라마운트 자본으로 <순응주의자>를 만들었다. 그는 <거미의 계략>에서 이전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고다르에 대해 회의하고, <순응주의자>에서 고다르라는 자신의 스승을 공식적으로 죽였다.
<순응주의자>처럼 <거미의 계략>은 파시스트 시기의 이탈리아를 다루고 있지만 1930년대를 꾸며놓은 것이 아니라 현재, 과거의 잠식, 과거 속에서 현재를 재창출한다. 영화의 허구적 세계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시간 속에서 벌어지며 그것들은 서로 겹쳐지면서 서로를 파괴한다.
모순을 지닌 거대한 기념비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1972)는 정치적 차원은 암시적인 영역에 던져두고 성 그 자체에 집중한다. 이 영화는 정신적으로 유배당한 남자 폴의 일주일을 쫓는다. 부르주아 여성 잔느와의 기묘한 성교는 가족, 교회, 국가, 제도의 위선에 대한 저항이다. 섹스는 그들의 갈망이자 무기이고 상징적인 치료제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베르톨루치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파격적인 성행위 묘사 때문에 한동안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1900년>(1976)은 베르톨루치 영화세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형식상으로 1964년이래 그가 추구했던 모든 요소들을 집결하고 있지만, 이전의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작품은 베르디가 사망한 1900년에서부터 제2차 세계 대전 해방의 날인 1945년 4월 25일까지 한 가족의 에피소드를 5시간 20분짜리 방대한 파노라마에 담았다. 거대한 영화제작팀과 미국자본을 가지고 이탈리아인의 정체성을 그린 이 작품은 베르톨루치의 표현을 따르면 ‘모순을 지닌 거대한 기념비’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이탈리아 영화들 가운데 가장 할리우드적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오리엔탈리즘에 심취한 베르톨루치
이후 작품으로는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을 다뤄 논쟁을 일으킨 <루나>(1979)와 부자관계, 유괴, 오늘날 이탈리아 테러리즘을 담은 <어리석은 남자의 비극>(1981)이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베르톨루치는 오리엔탈리즘에 관심을 두고 중국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자서전 ‘나의 반성’을 영화화한 <마지막 황제>(1987)로 아카데미에서 9개 부문상을 받았다.
<마지막 황제>는 서구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루나>, <어리석은 남자의 비극>, <마지막 황제>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존 파울즈의 컬트소설을 원작으로 한 <마지막 사랑>(1993)은 모로코의 풍경과 중동사람들의 이국적 성을 매혹적으로 다루었지만, 역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의 도마에 올랐고 흥행에 실패했다.
이후 베르톨루치는 작가로서 회의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1994년 작 <리틀부타>(1993) 역시 과도한 스펙터클과 엑조티즘이라고 혹평 받았다. 슬럼프를 딛고 15년 만에 이탈리아와 유럽으로 돌아와서 찍은 <스틸링 뷰티>(1996)에서 베르톨루치는 다시 정치적 관심을 드러냈다. <하나의 선택>(1998)은 여전히 당당한 현역임을 과시한 작품이다.
나는 영화가 좋다
TV의 대중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여건들에 대해 베르톨루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욕구불만이 많은 시네아스트처럼 TV를 위해 일했다. TV에 대해서 어떤 고민도 없이 말이다. 비록 우리가 TV용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은 영화를 위한 필름이다. <거미의 계략>은 클로즈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TV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해야 한다. TV는 영화를 이겼다. 그래서 오히려 더 필름의 장인이 되고자 한다. 나는 영화가 좋다.”
장인으로 남고 싶다는 베르톨루치, 그는 마르크스를 만나 동양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기까지 시대를 요약하는 영화의 이미지를 잡기 위해 노력한 감독이다. 쌍둥이 남매를 통해 영화의 역사, 60년대 시대상황, 문화예술 전반을 다루고 있는 <몽상가들>(2003), 10여 년 만에 연출한 <미앤유>(2012)는 제2의 몽상가를 연상케 하는 영화이다. 그는 끝없이 변화하고 복잡해지는 현실을 영화에 담기 위해 오늘도 역사의 현장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2013년 8월 28일부터 개최되는 제70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베르톨루치가 어떤 영화를 선택하게 될지 기대된다.
글 |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