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아시아의 보석과도 같은 국제영화제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벌써 제18회째를 맞으며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센텀시티, 해운대, 남포동 등지에서 개최된다. 이번에 초청된 영화들은 70개국의 총 301편으로,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37편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 제작지원작, 한국영화회고전, 특별전, 마스터클래스 등의 주제 아래 170여 편의 영화들이 관객들을 맞이하게 된다.

개막작으로는 부탄의 고승이자 영화감독인 키엔체 노르부의 <바라: 축복(Vara: A Blessing)>이 선정되었다. 수닐 강고파디아이의 단편 『피와 눈물』을 원작으로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이 작품은 인도 남부지방의 전통춤 ‘바라타나티암’을 매개로 남녀의 사랑과 자기희생, 삶의 역경을 헤쳐나가는 한 여인의 강인한 의지를 아름다운 영상 속에 그려냈다. 특히 제작에 참여한 스텝들이 미국, 홍콩, 대만, 인도,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글로벌한 프로젝트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의 시네필이 이루어낸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기 이전에는 한국의 영화 역사가 10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해외에서는 크고 작은 1천여 개 이상의 영화제들이 영화의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자국의 영화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 영화를 보려면 프랑스, 독일 문화원 등을 찾아야만 했고, 이곳에 온 사람들은 영화연구회 같은 모임을 만들면서 젊은 영화운동가, 평론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씨네필들은 부산에서 영화제가 개최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용관, 박광수, 전양준, 김지석 등을 들 수 있다.

1985년 현재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부산 경성대에 부임하면서 서울과 부산의 영화인들이 조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1989년에 비평전문지인 계간 『영화언어』가 창간되고 편집실이 부산으로 옮겨가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김지석과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사무국장인 오석근이 영화제를 기획하게 되었다. 해안 휴양지라는 지리적, 환경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국제영화 행사를 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수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했고, 부산 영화제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영화인들의 축제요, 한국의 자랑이 되었다.

이탈리아 페사로영화제와의 인연
1992년 이탈리아 페사로영화제에서 ‘한국영화특별전’이라는 주제로 한국 영화 30편을 초대했는데, 이때 부산국제영화제를 탄생시킨 씨네필들이 한데 뭉치게 되었다. 『영화언어』는 한국 영화 작품들을 소개하는 글을 제공했고, 현재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이용관, 김지석, 전양준, 박광수, 이효인, 안성기 등은 직접 페사로영화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를 통해 이탈리아에서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작은 영화제들이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당시 기획 중이던 영화제를 반드시 개최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뿐만 아니라 페사로영화제의 아드리아노 집행위원장의 통역으로 한국을 찾은 임안자 역시 부산영화제의 출범에 큰 기여를 했다. 이렇게 해서 1995년부터는 본격적인 준비 단계에 돌입하게 되었고, 당시 문화체육부 차관과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했던 김동호 위원장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추대하여 1996년 9월 13일 국내 최초 국제영화제가 개최되었다.

거장과 신인 감독들의 이탈리아 영화들
“올해 이탈리아 영화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지아니 아멜리오 등 거장들의 화제작 이외에도 신인 감독들의 개성 넘치는 영화들이 초대돼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며 이수원 월드프로그래머는 부산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이탈리아 영화를 소개한다. 초청된 7편 가운데 5편이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될 만큼 쟁쟁한 영화들이며, “<레프리>, <구원자>, <팔레르모의 결투>, <럭비에 실린 희망> 4편은 특히 신인 감독들의 첫 장편으로 향후 이탈리아 영화의 밝은 미래를 예견케 해준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성스러운 도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스트 지안프란코 로시의 신작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고도 덧붙인다. 엠마 단테가 감독한 <팔레르모의 결투>의 엘레나 코타는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우리에게 <시네마천국>으로 잘 알려진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신작 <베스트 오퍼>는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으로, 비르질 올드만이라는 미술품 감정사가 광장 공포증으로 방에 숨어 사는 여인에게 미술품 감정 의뢰를 받으면서 그녀에게 빠져든다는 이야기이다.

인문학과의 융합을 시도하는 BOOK TO FILM
올해 제2회를 맞이한 ‘BOOK TO FILM’은 출판물과의 연계 프로젝트로 출판 및 영화산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제 측에서는 “최근 국내외 영화 시장의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원작 소설의 재탄생’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받으면서 소설의 영화화가 증가하고 또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부응하며 타문화와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자 부산영화제에서 ‘BOOK TO FILM’이라는 융합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도는 분명 출판 시장과 영화 시장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방문객들은 영화의 전당 광장에 마련된 ‘북카페 라운지’에서 영화 관련 도서 및 역대 부산영화제에서 출간한 도서들을 열람할 수 있으며, 저자 사인회 등 각종 이벤트도 즐길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우리 영화 <만찬>
폐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가족멜로드라마의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낸 김동현 감독의 <만찬>으로, 가족의 불행과 불운을 집요한 관찰력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운명은 결국 이 가족을 함께 만찬 자리에 앉히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이 자리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하나가 되고, 한국의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성한 영화 ‘만찬’의 축제를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 정란기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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