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리얼리즘 영화에 비친 이탈리아노를 만나자
[아츠앤컬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탈리아 영화는 예술영화’라는 말이 정설처럼 통한다. 그만큼 이탈리아 영화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성장과 쇠락을 반복하여 무수한 걸작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양적인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영화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네오리얼리즘은 1942년부터 10여 년간 지속된 영화운동으로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사실주의를 지향하는 이탈리아 감독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네오리얼리즘의 기원이 되는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을 제대로 알려면 ‘베리시모 스타일’ 영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영화들은 당시의 상투적인 영화들에 대항하면서 봉건사회에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담으려 했다. 이러한 시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네오리얼리즘 영화감독들에게 계승되었다. 그런 점에서 네오리얼리즘은 영화스타일을 말하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작가와 영화의 사회의식, 도덕관, 정치 철학의 총체로 볼 수 있다.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를 최초의 진정한 네오리얼리즘 영화로 평가하지만, 실제로 비스콘티의 <강박관념>(1942)이 운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레지스탕스를 주로 다루었지만 곧 사회 문제를 파헤친 영화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도시빈민과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담담한 묘사를 통해 비판한 데시카의 <구두닦이>(1946), <자전거 도둑>(1948)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현실에서 간과되었던 사실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를 현실의 혼돈에서 구제한다는 것이 바로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사명이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타일과 내용 면에서 보면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삶의 단면을 반영시켜야 하며, 일상생활로 시작해서 끝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리얼리티를 위해서는 문학작품을 각색해서는 안 되었으며, 영화는 사회 현실 즉 이탈리아의 빈곤과 실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지방 사투리를 그대로 썼다. 조명은 자연광을 활용했고, 핸드헬드 카메라를 쓰며, 관찰과 분석적 시각을 유지함으로써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 또 다른 특징은 제작방식의 새로움과 독특한 세계관이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영화가 바로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이었다.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전후 이탈리아의 특수한 사회, 경제적 상황 때문이다. 로마의 촬영소인 치네치타는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필름과 조명 사정은 최악의 상태였다. 이들은 최소한의 경비로 영화를 찍어야 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을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고, 조명을 최소화하며, 후시 녹음을 통해 비용을 절감했다. 이런 방식 덕분에 카메라는 조명이나 녹음 등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들이 비 직업 배우들을 기용한 감독들의 의도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켜 영화의 사실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네오리얼리즘 감독과 그들의 영화
네오리얼리즘 3대 감독이라 불리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키노 비스콘티, 비토리오 데시카는 우리에게 이미 고전이 되어버려 잊혀가는 감독들이다. 그들의 영화세계를 통해 네오리얼리즘이 영화를 통해서 참모습을 발견하고 여기에 관객 자신의 견해를 부여하는 영화가 진정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무방비 도시>
로셀리니는 근본적으로 파시즘과 타협할 수 없는 자유주의적 휴머니스트였다. 영화를 계산하지 않고 찍으며, 배우가 아닌 사람들도 카메라 앞에 세웠다. 시나리오 없이 세르지오 아미데이와 펠리니가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출발점으로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전쟁 3부작으로 알려진 <무방비 도시>(1945), <전화의 저편>(1947), <독일 영년>(1947)은 크게 두 가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허무주의에 가깝도록 전쟁의 잔혹함을 그려내는 것이고, 둘째는 전쟁과 같이 개인을 말살시키는 역사적 사건과 사회 속에서 파괴되는 개인의 실존을 말하는 것이다. 후기에는 주로 역사에 관한 관심보다는 개인 심리의 탐구가 영화의 주조를 이뤘다.
<무방비 도시>는 네오리얼리즘의 첫 영화인 동시에 전후 유럽 영화의 첫 번째 걸작으로 꼽는다. 영화는 지하 운동가인 만프레디가 게슈타포에 쫓기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독일군 점령하의 로마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 주연 배우 안나 마냐니를 제외하고는 연기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를 기용했고,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에서 촬영했다.
로셀리니는 도식적인 연기보다는 배우들의 일상 속에서 생생한 몸짓을 담길 원했고, 전후 이탈리아의 혼돈과 황폐함을 화면에 담으려 했다. 이 영화는 파시즘의 야만성에 대항하는 투쟁과정을 묘사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네오리얼리즘 시대를 연 작품으로 후대의 영화작가들과 누벨바드, 제3세계 영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루키노 비스콘티 <강박관념>
비스콘티는 네오리얼리즘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스타일과 주제 면에서 다소 변화를 주면서 발전해갔다. 그의 초기 작품은 마르크시즘과 원근도법의 바로크적 취미가 결합되어있지만, 전체 작품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귀족주의의 퇴폐에 대한 재창조와 실험정신이다. 그의 작품에는 오페라적인 요소가 많았으며, 역사를 거대한 오페라 무대로 보고 관객이 관람용 안경을 세세한 곳으로 느리게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강박관념>은 시골의 허름한 여관의 식당, 영화에는 너무 평범해서 밉기까지 한 남편 브라가, 정열적인 젊은 부인 조반나와 방랑자 지노가 등장한다. 이들 간에 어떤 욕망의 분출이 있으리라는 걸 예상하지만, 비스콘티는 정열의 탐욕적 속성보다는 내면의 파괴적인 힘이 어떻게 살인과 죽음으로 치닫는가를 보여준다. 이처럼 비스콘티의 영화는 ‘사회적 문제와 시적 감흥의 결합’으로 연결되며, 사물의 이중성 혹은 다중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상적 사회문제에 대한 시적인 재해석’이라는 예술적 관점을 흩트리지 않는다.
비토리오 데시카 <자전거 도둑>
데시카는 감독이 되기 전에 영화배우로 유명하다. 장콕도에 의하면 데시카 영화의 특징이 삶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으로 일상과 환상을 혼합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삶과 사랑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하고 분석하는 기법이 뛰어나다.
<자전거 도둑>은 이탈리아의 어느 가난한 가장과 그의 어린 아들이 등장한다. 실업에 힘들어하는 중년의 노동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꼭 필요한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 속에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이 스며있다. 로마의 거리, 아파트, 사무실 등 거의 전부가 촬영소 밖에서 촬영되었다.
데시카 감독은 전후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과 궁핍한 현실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의 모습을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사람은 배우가 아닌 실제 기계공이었고 그의 아들역인 소년은 로마의 신문 배달원이었다. 이 두 사람의 연기는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두 사람의 묘사만으로도 영화의 정서를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게 전달하였다.
대부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처럼 <자전거 도둑>은 이들의 삶에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군중들 틈에서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힘없이 걸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 수치심에 흐느끼고, 아들의 여린 손이 아버지의 손을 더듬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마치 맞잡은 두 손이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앙드레 바쟁은 “영화란 그것을 통해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네오리얼리즘은 시사적이며, 구체적인 것, 무의미해 보이는 사실의 관찰, 휴먼드라마, 배우의 진실성 등을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노력을 했다. 현실에서 간과되었던 사실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를 현실의 혼돈에서 구제한다는 것이 바로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사명이었다. 영화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은 현실을 포착하는 것이고, 그 현실을 변형시켜 스크린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고전이나 현대영화에서 공통적인것이 아닐까 싶다.
글 |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