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 형태의 철학 - ‘얹다’
올바른 걸음걸이와 자세 교정을 제일 쉽게 하는 방법이 있다. 패션모델들의 런웨이 워킹처럼 머리 위에 두꺼운 책이나 쟁반을 얹고 걸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처음에는 머리 위에 있는 책이나 쟁반의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곧 허리와 어깨가반듯하게 펴지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게 되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다. 이러고 나서 키를 재보면 본인도 몰랐던 숨겨진 키1~2cm를 발견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사극에서 <갓>과 함께 등장한 배우의 균형 잡힌 위풍당당한 모습을 상상해보자. <갓>이나 <유건>의 내경(머리에 닿는 부분)의 둘레는 찻잔 받침 둘레인 48cm~50cm이다. 일반 남자 성인의 평균 머리둘레가 58cm임을 감안한다면, 그 배우가 평소 모습보다 더욱 당당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머리 위의 <갓> 덕이 아닐까?
<갓>의 주 재료는 말의 꼬리털을 가공한 가벼운 말총(단백질)과 형태를 잘 유지시켜 주는 머리카락 굵기의 대나무를 다듬어 만든 죽사(탄소)로 이루어져 있어 가벼운 무게(약60g)와 탄성(형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는 우리 한민족의 대표 모자인 <갓>의 형태 철학을 충족한다. 모자를 얹음으로써 비록 불안정하고 불편하지만 오피니언 리더들의 규율의 실천을 감수하는 것이며, 대신에 가벼운 재료로 신체적으로 목과 허리 등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는 지혜로운 배려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매지 마라”는 선현의 말이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머리 위에 틀어진 갓을 고쳐 쓰기 위해 위아래로 매만지는 폼새가 필시 오얏을 따는 도둑으로 오인받기 십상인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이 속담에 <갓>이 인용되었듯이 <갓>은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수시로 손을 봐야 하는 물리적 구조를 가진다. 선비들에게 <갓>을 필두로 하여 <정자관, 방관, 유건 등>은 일상생활에서 착용하기 굉장히 성가시고, 관리하기도 까다로운 모자임에는 분명하지만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체면이요, 책임이다.
2. 쓰임의 철학 - ‘곧음, 꼿꼿함, 의로움.’
예비군 훈련장에서 모자를 삐딱하게 쓴 사람의 모습만으로는 그가 바깥에서 누리는 그의 신분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만일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왕관을 대충 머리 위에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 황제에게 존엄이 생길 수 있을까? 모자는 제자리에 올바르게 있어서 가치가 돋보여지는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구도적 수행의 도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한민족 선비들의 대표적 상징인 모자문화는 자신과 그 시대적 삶 철학과 실천의 일체감을 강조한 참다운 사회적 리더들의 정신세계의 외형적 상징물이다. 이러한 우리의 선비철학을 연구한 외국인들의 자료를 살펴보면 선비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모자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장엄하다.
“자기의 마음과 그 마음에 구비되어 있는 도덕성을 믿고 그것을 올곧게 전 우주에 확장시키는 것이 유가(선비)의 근본적인 입장이다. 유가에서(선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비뚤어진 것, 비뚤어진 마음인데 이는 강렬한 반항정신을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한국인은 비뚤어진 것에는 올곧음으로 맞서고 올곧은 것을 상대할 때에는 올곧음을 겨룬다.”(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P17.오구라 기조. 2017.)
“역사 속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선비)은 스스로를 정의로워야(곧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Empire & Righteous Nation. 오드아른 베스타. 2017)
프랑스에서도 천민과 귀족을 구분할 때 “tête nue”라는 표현이 있다. 그 뜻은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못하다’라는 의미로 귀족과 상반된 천민의 개념으로 쓰였는데, “맨 상투머리”라는 우리 표현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모자철학은 특정 모자를 쓸 수 있는 자격은 분명 특별한 행운과 혜택이지만 그 모자를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본인에게 동반되는 불편한 엄격함을 감수해야 하는 ‘attitude’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자의 보이지 않는 힘, 사회적 예우(social hospitality)를 부르는 태도양식! 우리는 곧게, 올바르게, 의로움으로 표현되는 모자의 중요한 철학적 속성을 가진 민족임을 소환한다. 우리 민족은 머리 위에 우아함의 실체, 모자가 있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이제 우리도 다시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모자와 친해질 것을!
글 | 조현종
㈜샤뽀 / 루이엘모자박물관 대표이사, 전북대학교 겸임교수/경영학박사, (사)하이서울기업협회 협회장, (사)한국의류산업학회 산학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