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arding Warhol: Fifty Artists and Sixty Years”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아츠앤컬쳐] 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다. 미국 최대의 미술품 컬렉션을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앤디 워홀과 지난 50년간 워홀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현대작가 60명의 작품을 5가지의 테마로 나누어 전시한다.

1928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카네기 멜런 대학에서 산업미술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뉴욕으로 건너와 성공적인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워홀은 1960년 초 돌연 연재만화를 이용해 실험적인 회화작업을 시작했다. 다른 팝아티스트 작업과의 차별화를 고민하던 워홀에게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워홀을 처음으로 언론에 주목을 받게 만든 캠벨 수프 캔과 달러 페인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1962년 워홀의 첫 개인전에 그에게 가장 친근한 점심 메뉴였던 캠벨 수프캔 32개가 프린트되어 진열되어졌다. 당시 옆 갤러리는 창가에 실제로 슈퍼마켓에서 파는 수프캔을 진열해놓고 “우리는 진짜를 단돈 29센트에 팝니다.”라고 적어 워홀의 전시를 비웃었고 작품이 판매가 되지 않자 갤러리 대표가 모두를 1,000달러에 구매했다. 그 후 199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1,450만 달러에 넘겨졌고,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상업개념을 도입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워홀의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시기에 작가들은 추상 표현주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워홀의 페인팅은 추상적이지도 표현주의적이지도 않았다. 귀족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고가의 작품이 우아하거나 철학적이지도, 신비롭거나 격정적인 표현마저도 배제된 체 감히 일상에서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혀 고급스럽지 않은 생필품이 성의 없이 덩그러니 캔버스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한술 더 떠 오일이 아닌 판화작업을 함으로써 캔버스에서 손맛을 아주 제거해버리지 않았나? 워홀은 작업을 통해 미국의 소비문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은 사고하기보다는 소비하는 사회이다.”라고 말한다. 워홀이 즐겨 소재로 삼던 코카콜라에 관한 그의 생각이다. “모든 이들은 같은 코카콜라를 먹는다. 콜라는 콜라이다. 돈을 더 준다 해도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대통령도 나도 모두 같은 콜라를 마신다.” 현대 대중 소비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이지 않는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서 박수받는 작업을 하지 않았던, 소제에서 작업과정까지 모두가 거부하는 방식을 추구하던 워홀은 어록에 “나는 평범한 것을 좋아한다.” 라고 남긴다. 그가 주제로 다루던 것은 우리 일상에 관한 것이고, 사람, 죽음, 희소성이 아닌 대량복제였다. 워홀은 대중문화와 대량생산 개념을 그의 작업세계에 도입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라고 부르며 작품생산도 일반 소비재처럼 제작할 수 있다고 명명하였다.

조수나 동네 인쇄소에서 실크스크린을 찍었고 현재 앤디 워홀 진품 감정위원회는 실제로 이 문제에 직면해있다. 워홀은 스스로 슈퍼스타가 되기를 갈구했고 그의 작업장은 할리우드 스타, 지식인, 거리의 보헤미안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워홀은 그의 작품보다 그의 연극적인 태도와 사치스러운 파티문화로 더욱 많은 유명세를 모았고 그는 수줍은 슈퍼스타가 되었다. ‘앤디 워홀’은 브랜드가 되었고 실크스크린, 드로잉, 페인팅, 영화제작, 음악, 책, 패션 등 다양한 작업을 하였으며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의 고정관념과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개념미술작가 존 발데사리는 워홀을 생각하며 모든 사물을 볼 때 “왜 저것은 아트가 되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모든 것이 예술의 주제가 되고 소제가 될 수 있는 통로가 열렸고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다섯 가지 테마, ‘일상뉴스: 평범함에서 재해로’, ‘초상화: 유명인사과 권력’, ‘동성애 연구: 정체성의 변화’, ‘소비 이미지: 도용, 추상, 연속성’, ‘무경계성: 사업, 협업, 스펙터클’로 나누어져서 워홀과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 작품들로 기획되었다.

현대미술에서 워홀의 영향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운 기획전이었으나, 전시는 내용 짜임새와 작품선정에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다.

워홀은 1987년 담낭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서 “죽음은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 또 죽음은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준다.” 라고 말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더 큰 부를 이루고 싶은 욕망과 더 유명한 스타가 되고 싶은 갈망에 진솔하다. 워홀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가 마지막으로 한 유언은
현실이 되었다.

글 | 장신정
아츠앤컬쳐 뉴욕특파원, 전시 & 프로그램 기획.
NYU 예술경영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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