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마케팅의 귀재
[아츠앤컬쳐] 현재 뉴욕 첼시에서 활동하는 미국 조각가 제프 쿤스(b.1955)는 현대 미술시장에 바람을 일으키는 신선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마케팅의 귀재이자 현시대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모호하게 설정한다. 저속한 대상들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며, 반어법적인 시대 비판적 표현인지 쿤스의 순수한 동경을 적극 표현한 것인지 그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시킨다. 쿤스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고급문화, 저급문화, 네오 팝아트, 명성과 키치, 풍선과 같은 대량생산품에 대한 찬양이다.
빌려온다는 의미의 ‘차용(借用)’은 미술사, 광고, 미디어 등에 이미 등장한 형상을 가지고 새로운 형상과 합성시켜 또 다른 작품을 창조하는 제작방법을 가리킨다. 차용이 하나의 방법론인 만큼 그 방식과 의미는 그것을 사용하는 작가들만큼이나 다양하지만 현대미술에서 특징적인 것은 점차 차용한 요소 및 ‘차용’ 원리 그 자체가 작품의 본질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순수한 창조란 가능한 것인가? 인간에게는 창조적으로 복제하는 것, 인간이 신이 아닌 까닭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하여 재창조하는 작업까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쿤스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일찍이 도용에 눈을 떴다.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고는 ‘제프리 쿤스’라고 사인하고 그의 아버지 가게에서 팔았다.
1976년에 메릴랜드 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간 쿤스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멤버십 안내부에서 뛰어난 영업사원으로 인정받았고, 5년간 월스트리트에서 상품중개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금융가에서의 경험은 쿤스의 미래에 자신의 작품 마케팅을 전략적으로 꾸려나가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1980년대 쿤스는 뻔뻔스러울 만큼 과감하고 전략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홍보하였고 또 이 시대에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대량생산물들을 세계 최고가 예술품들로 격상시켜 놓았다. 그는 장난감이나 키치적인 대상들을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하여 고급스러운 마무리에 세련되고 멋진 대형 조각품으로 바꾸어놓았다.
‘진부’(1988)라는 시리즈에서 쿤스는 마이클 잭슨과 그의 애완동물인 침팬지 버블스를 실물과 똑같은 크기의 조각으로 제작하여 사회적 취향과 유명인에 관한 논란을 제기했고, 1991년, 그가 이탈리아 포르노 여배우이자 국회의원인 일로나 스텔라와 결혼하자 그에 대한 악평은 최대를 달하였다. 성에 관한 노골적인 디테일묘사로 자신들의 성관계를 표현한 ‘메이드 인 헤븐’(1990~1991) 시리즈는 논란을 일으키면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그는 외부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들을 즐겼다.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편해지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는 그 힐난을 즐기었다. 그의 이름이 신문상에 떠올랐을 때 그의 작품가 그래프는 상승세를 타게 된다는 원리를 파악한 탓인가?
2007년 11월 뉴욕의 ‘옥션 위크(Auction Week)’, 그의 조각작품이 크리스티와 소더비에 나란히 하이라이트로 출품돼 하루 사이에 낙찰가 기록이 연달아 깨졌다. 크리스티에서는 어린아이의 키만 한 대형 블루 다이아몬드가 1,180만 달러에 낙찰돼 작가의 최고가 기록, 바로 다음날 소더비에서 천장에 매달린 대형 빨간 하트 조각이 2,350만 달러에 낙찰돼 하루 만에 기록을 경신했다.
이 두 작품은 뉴욕에서 제프 쿤스 전속 화랑인 가고시안 갤러리의 래리 가고시안이 사들였다. 이렇게 갤러리는 전략적으로 전속작가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자작극을 벌인다. 딜러가 작가를 만들어낸다는 논란이 빚어질지언정 그 마케팅 효과는 탁월하다.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입방아에 오를 만한 ‘거리’를 제공해준다. 사람들은 스토리에 매료된다. 지루한 일상에 ‘거리’를 제공받기를 갈구한다.
쿤스 작품의 뿌리는 키치(kitsch)이다. 1870년대 남부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물건을 속여 팔거나 강매한다’는 뜻으로 쓰이다가 갈수록 의미가 확대되면서 ‘잡동사니’ ‘천박한’ ‘모조품의’ 등의 뜻으로 통속적이고 값싼 예술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유럽 전역이 이미 급속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파급 속도도 빨라 중산층도 그림과 같은 예술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에 따라 미술품이나 그림을 사들이려는 욕구가 강해졌는데, 키치는 바로 이러한 중산층의 문화 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럴듯한 그림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하던 개념이다.
쿤스는 앤디 워홀에 이어 작품 제작과정을 공장화시켰고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여 시리즈로 작품을 생산한다. 본인은 제작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지휘 감독하고, 기술자들과 조수들을 고용하여 모든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경영한다.
글 | 장신정
아츠앤컬쳐 뉴욕특파원, 전시 & 프로그램 기획. NYU 예술경영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