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브리지스톤 미술관 (Bridgestone Museum of Art) ,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Musée de l’Orangerie)
[아츠앤컬쳐] 8월의 파리는 적막하다. 관광객이 넘치는 여름이지만, 현지인들은 대부분 파리를 떠난다. 초여름 한 해를 마감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졸업식을 비롯하여 기업들은 대부분 이 시점에 연간리포트를 정리한다. 그렇다면, 2011~2012 시즌의 문화계 이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올해로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수많은 음악회와 학술포럼이 열리고, 파리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드뷔시를 기념하는 ‘드뷔시, 음악과 예술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나는 시각예술에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1911년에 드뷔시가 남긴 기록이다. 그는 이처럼 미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특히 프랑스 작가인 드가, 오딜롱 르동, 까미유 끌로델과 영국 화가인 휘슬러와 터너의 작품을 참 좋아했으며, 여기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당시의 평론에 기록되었다.
이번 전시는 드뷔시의 음악을 축으로 하여, 그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미친 문학작품과 회화 작품을 다루었을 뿐 아니라 공연예술에 이르는 가히 장르를 초월한 총체적인 종합예술전시라고 볼 수 있다. 총 150여 점의 작품을 통하여, 19세기 프랑스에서 드뷔시가 인상주의, 자포니즘, 아르누보와 같은 다양한 미술사조들을 통하여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전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포스터에 사용된 앙리 에드몽 크로스(Henri-Edmond Cross)의 ‘금섬’이 보인다. 크로스는 점묘법을 구사한 신인상주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지평선이 아주 낮게 자리해서 그림의 대부분이 바다로 덮여 있는데, 드뷔시에게 있어서 바다를 비롯한 물이라는 소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점으로 표현된 바닷물의 움직임이 고요하고 잔잔한 드뷔시의 음악과 닮아 있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르롤자매’라는 친숙한 그림도 보이는데, 화가인 앙리 르롤은 드뷔시와 매우 가깝게 지내며, 서로를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르롤의 딸을 소재로 나비파 화가인 모리스 드니즈가 그린 작품 외에도 에드와르 브야드의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하여, 당시 프랑스에서 얼마나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었는지 추측된다.
자포니즘이라는 테마로 꾸며진 섹션에는 19세기 일본 판화를 대표하는 히로시게와 호쿠사이의 작품, 아르누보 양식의 도자기를 비롯한 드뷔시가 소장하고 있었던 다양한 일본 오브제들이 전시 되었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고갱이 나무로 조각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드뷔시가 다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위스 화가인 펠릭스 발로통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목판화 속의 모델이 드뷔시라는 설이 있다.
또한, 드뷔시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연의 풍경을 소재로 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마네와 드가를 비롯하여 터너와 호머가 표현한 다양한 표정의 바다의 모습은 마치 드뷔시의 곡을 각기 다른 악기로 연주하여 울려 퍼지는 화음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드뷔시의 인상주의 오페라인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비롯하여 러시아 출신의 화가이자 무대의상 디자이너인 레옹 박스트가 작업한 다양한 무대의상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드뷔시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였다.
본 전시는 오르세이 미술관 관장인 기 꼬즈발(Guy Cogeval), 음악학자인 장 미셸 넥투(Jean Michel Nectoux), 큐레이터 자비에 레이(Xavier Rey)가 함께 기획하였으며, 전시 작품의 일부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브리지스톤 미술관과 공동주최하였다. 참고로 이번 전시는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기획전시 중 최대의 관람객 동원이라는 이례적인 성공에 이어서, 2012년 7월 14일부터 10월 14일까지 일본의 도쿄에 소재한 이시바시 재단의 브리지스톤 미술관으로 순회전시 중이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 파리예술경영대 EAC 출강
EAC 예술경영학 학·석 사 졸업, 소르본느대 Sorbonne 미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