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국립 가르니에 오페라 (Opéra Garnier National de Paris)
[아츠앤컬쳐] 파리 국립오페라는 2012~2013시즌에 첫 작품으로 발레 ‘조르주 발랑신’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러시아 안무가인 조르주 발랑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의 ‘세레나드(Sérénade), 아곤(Agon), 돌아온 탕자(Le Fils prodigue)’라는 세 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그가 파리에서 활동했던 발레 뤼스(Ballet Russe) 시절과 뉴욕의 미국발레학교(School of American Ballet)에서 활동하던 시기까지 안무가의 총체적인 창작세계가 입체적으로 조명되었다.
20세기 최고의 안무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발랑신의 본명은 조르지 멜리토니스 발랑시바드제(Giorgi Melitonis Balanchivadze)이다. 190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작곡가인 아버지를 비롯하여 음악인으로 구성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우연히 아홉 살에 발레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무용세계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불안정한 정세를 피하여 발랑신은 발레리나인 아내와 함께 1924년에 파리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파리에서 무용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 de Diaghilev)를 만나게 되면서 그가 창단한 발레 뤼스에서 활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무용수로 후에는 안무가로 발랑신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 당시에 창작한 발레가 ‘돌아온 탕자’이다.
1929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잘 알려진 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극이다. 다양한 장르의 무용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마치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듯한 기묘한 동작이 인상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에 프랑스 화가인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가 검은 선이 두드러지는 그림의 무대 디자인과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의상을 작업하였으며, 현재까지 그 전통이 지켜지고 있다.
한편, 1933년에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메세나인 링컨 키스타인(Lincoln Kirstein)으로부터 미국에 최초의 발레학교를 설립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이듬해 미국발레학교(School of American Ballet)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곡에 맞추어 어리고 가는 체형의 무용수를 위하여 ‘세레나데(Sérénade)’를 탄생시켰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타도 없고 조연도 없이 하늘색 의상의 아름다운 무용수들이 마치 부드러운 바람처럼, 잔잔한 파도처럼 무대를 수놓았다. 마지막 작품인 아곤(Agon)은 발랑신의 그리스 발레 시리즈의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스포츠 경합에서 영감을 받아 1957년에 창작된 이 작품은 지극히 현대적인 색채가 강하다. 처음과 끝이 같아 마치 하나의 회로를 연상시키는 듯한 이 작품은 러시아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와 함께 작업한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했다고 기록되었다. 열두 명의 무용수가 마치 메트로놈과 같이 정확하게 움직인다. 마치 체스의 경기를 보는 것처럼 한 파트가 움직이면 다른 파트가 전자에 반격하는 듯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아곤은 순수한 발레의 범주 그 이상이다. 고민과 두려움 안에서 변모된 인간존재의 본질이 춤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처럼 1929년, 1934년 그리고 1957년에 각각 완성된 세 작품은 안무가의 초기부터 말년까지 변화하는 작품성이 잘 드러나게 전개되었다. 한편, 여인들을 사랑했던 남자로 기억되는 발랑신은 무려 네 번이나 결혼을 한 극적인 삶을 살았다. 발레 뤼스의 안무가이자 미국 최초의 발레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한 20세기 최고의 안무가인 발랑신은 무용수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과 이를 표면으로 끌어내는 피그말리온 신화 속의 조각가와 같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 파리예술경영대 EAC 출강
EAC 예술경영학 학·석 사 졸업, 소르본느대 Sorbonne 미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