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의 작품은 잘 익은 딸기를 닮았다. 볼수록 눈길을 사로잡는 어여쁜 색깔과 후각을 자극하는 적당한 향기, 살며시 쓰다듬다 보면 그 촉감의 여운이 참으로 오래갈듯하다. 거기에 따뜻한 감성이 돋는 에피소드들이 일품이다. 작품 <집으로 가는 길>을 봐도 그렇다. 어둑한 밤길을 흰색의 강아지(빙고)가 등불을 앞장세우고, 빨간색 고양이(모모)가 손을 꼭 맞잡았다. 갑작스러운 등불에 놀란 청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어오르고, 장미 덩굴이 우거진 풀숲엔 비단뱀과 비둘기가 몸을 숨기고 있다. 구불구불 언덕길은 멀기만 하고, 뭔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하지만, 저 멀리 여명이 비친 하늘을 보니 불안감도 곧 끝나려나 보다. 제목처럼 집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집은 그만한 고생을 감내할 만큼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이다.
여성의 감성을 진솔하게 풀어낸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작품 제목은 <기억의 덩어리>이다. 화면 가득 보라색 수국꽃이 만발했다. 꽃 이름처럼 금방이라도 수국수국 이야기꽃이 피어날 듯하다. 마당 한가득 탐스럽게 채운 수국꽃밭 사이사이를 여린 손목들이 분주하다. 자세히 보면 제각각의 손들은 뭔가 바쁜 모양새이다. 눈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꽃밭의 정감과 쉴 틈 없는 여성의 손놀림은 큰 대조를 이룬다. 일상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서 봐야 희극이라 했듯, 가까이 보면 저마다의 사정들로 분주한 것이 인생살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박성수의 그림들은 희화된 인생의 에피소드들이 작품에 녹아 있다. 아마도 <플랜A에서 플랜B까지>의 작품을 보면 박성수의 인생미학이 더욱 또렷하게 감지된다. 100호를 훌쩍 넘긴 대형작품(193.9×130.3cm)을 꽉 채운 것은 녹색 미로길이다. 각각의 막다른 길목에는 다양한 미션들이 기다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려운 시련이라기보다, 화가로 살아가는 일상의 퍼즐을 보는 듯하다. 초승달 걸린 밤하늘, 둥지를 채운 새알, 모닥불 피우기와 나무 기르기, 작업 중인 화구 등 그녀가 작업실에 보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모음이다. 아마도 제목을 보니 ‘어떤 경우의 수라도 괜찮으니 지금만 같았으면’ 하는 긍정의 메시지가 느껴진다.이처럼 박성수의 그림 속의 이야기는 인생 에너지를 충전해줄 갖가지 추억들이 가득하다.
특히 박성수가 그려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더욱 친숙하고 정감이 돋는다. 여성작가로서의 자전적 이야기이면서도 그 이면엔 어머니나 할머니가 겪은 삶의 애환과 무게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성수의 손목’은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전하는 딸의 고백이자, 미래의 자신에게 전하는 당부이기도 한 셈이다. 시공간을 지나도 변하지 않은 삶의 무게는 박성수만의 위트 넘치는 사랑의 세레나데 앞에선 눈 녹듯 여려진다. 손목의 다양한 제스처들은 삶의 희망과 비전을 부르는 화려한 사인이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박성수의 그림그리기 일상은 숨 쉬듯 자연스럽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흔적을 드로잉으로 옮기는가 하면, 직접 체험하고 체감한 일상에 주목한 작품으로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가령 페이스북에 한때 ‘1일 1드로잉’을 올려 큰 화제를 불러모았을 정도였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지만, 그 안의 미로 속에 숨겨졌던 삶의 재미를 발굴해내는 남다른 감각을 지녔다. 이번에 ‘황홀한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한 개인전 역시 그녀만의 견고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성수의 개인전은 ‘황홀한 고백’이란 제목으로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의 라흰갤러리(02-534-2033)에서 이달 31일까지 진행 중이다.
작가소개 | 박성수
박성수(1975~) 작가는 한남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주로 강아지 캐릭터 빙고와 고양이 캐릭터 모모가 함께 만들어가는 따뜻한 감성의 에피소드를 선보여 많은 마니아층을 갖고 있다. 최근엔 여성의 삶을 반추한 일명 ‘손목 시리즈’를 같이 선보이며 작품의 내재된 깊이를 더하고 있다.그동안 2020 황홀한 고백(라흰갤러리, 서울)ㆍ2018 피고지고(도로시 살롱, 서울)ㆍ2016 별별사랑(도로시 살롱, 서울)ㆍ2015 못생긴 내 사랑(갤러리 미르, 대구)ㆍLovely Daily(카카듀 강남 본점, 서울)ㆍ2013 젊은 작가 창작지원-사랑...그건 거짓말(롯데갤러리, 대전)ㆍ바람이 불면 네가 보인다(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갤러리 H, 서울) 등 13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2020 무빙아트갤러리 “ON MY RUNWAY #LOVE”(현대백화점 판교, 서울)ㆍ2019 AHAF 아트페어(파라다이스호텔, 부산)ㆍ친구들과 함께(63아트홀, 서울)ㆍ행복한 동행(가나아트파크, 장흥)ㆍ소소한 희노애락(정읍시립미술관, 정읍)ㆍ2018 100대 명반 100대 아티스트 대중가요(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 서울) 등 다수의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필자소개 | 김윤섭
미술평론가, 국립현대미술관 및 정부미술은행 작품가격 평가위원,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