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탄생 110주년 기념전
올해는 한국 문학계의 대표적인 천재 작가로 알려진 이상(李箱ㆍ본명 김해경, 1910~1937)의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다. 그의 소설 중에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날개」 첫 부분에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라는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시대적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작가 자신이나 당시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아무리 큰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다한들 무얼 하겠나. 주변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이런 시대상은 비단 이상이 살던 그 시절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상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한 전시가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시인 이상과 5인의 아해들>이다. 이는 ‘화수(畵手)’로 불려온 조영남이 그린 5인의 천재들 이야기이다. 마침 얼마 전 출간된 단행본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혜화1117)의 출판기념전이기도 하다. 이상 시인에 관한 조영남의 두 번째 단행본이고, 수십 년 동안 이상에 관해 연구하고 그림으로 그린 작품을 폭넓게 선보이는 첫 번째 전시다.
최근 몇 년간 조영남에 대한 이런저런 대소사가 많았다. 화투 그림을 대신 그리게 했다는 점이 불거져 법정 다툼으로까지 갔었다. 최종 결정은 무죄였다. 그렇지만 대중 인지도가 높은 공인이란 측면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불만을 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조영남에 대해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미 지난 2010년에도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상의 시(詩) 전체를 해설한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한길사) 단행본으로 큰 화제를 모았었다.
전시 작품 중에 <묘비명>은 1995년 제작된 것이다. 화면에는 ‘이상李箱 시詩 쓰다말다’란 글귀와 이상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또한 2008년 작품인 <대한大韓 시인詩人 이상李箱을 위한 지상 최대의 장례식葬禮式> 역시 그가 이상을 얼마나 숭상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특유의 트레이드마크인 화투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길을 만들어 이상 시인을 축복하는 장면이다. 조영남은 자신에게 이상 시인은 이미 20대부터 정신적 멘토(mentor)였다고 고백한다.
전시의 대표작이면서 동시에 단행본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은 작년에 제작된 <보컬그룹 李箱과 5인의 아해들 이런 詩를 노래하다>이다. 각 장르별 대표적인 천재들을 소환해 이상과 함께 5인조 보컬 그룹을 결성한다는 설정의 내용이다. 중앙에 배치된 인물들의 리더는 이상이며, 미술의 피카소, 음악의 말러, 과학의 아인슈타인, 철학의 니체 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5인조 천재들의 곡명은 ‘이런 詩’이다. 이상의 동명(同名) 시를 가사로 삼아 조영남이 작곡한 것이다. 실제로 전시 개막식에서 조영남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해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화수 조영남은 1945년 황해도 남천에서 출생했으니, 지금은 70대 중반이다. 1964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입학했고, 1968년 팝송 <딜라일라 Delilah>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71년 군에 입대할 즈음부터 독자적으로 미술을 익혀 1973년 인사동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50여 회의 개인전과 600여 회 이상의 단체기획전에 참여했다. 그동안 ‘그림 그리는 가수’로서 폭넓은 행보를 보여 오면서 사회적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 <시인 이상과 5인의 아해들―화수 조영남이 그린 5인의 천재들>을 통해 관객은 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전시는 이번 달 24일까지 진행 중이다.
필자소개 | 김윤섭 미술사 박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2020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