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미국 와이오밍(Wyoming)주 코디(Cody)의 어느 한 농가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폴록은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여러 곳을 떠돌며 생활하였다. 그렇지만 폴록이 유년 시절 마음에 새긴 와이오밍주의 풍경은 훗날 그의 그림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와이오밍주 출신답게 폴록은 인디언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형형색색으로 염색한 모래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창조한 서부 인디언의 미술은 폴록의 인상에 오래 남아 있었다. 폴록은 와이오밍주의 정열적인 힘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강력하고 독자적인 제작 방법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29년 뉴욕으로 가서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미국 벽화 예술가인 토마스 하트 벤톤(Thomas Hart Benton, 1889~1975)을 사사한다. 벤톤은 시대 상황을 적용하여 추상화를 그리고, 미국만의 예술을 주장한 사회적인 화가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폴록의 초기 작품인 <서부로 가는 길(Going West)>(1934-1935)은 미국 지방주의 화풍으로, 처음부터 폴록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추상표현주의 작품부터 그린 건 아니다.
추상표현주의는 형식적으로 추상적이지만 내용적으로 표현주의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러한 추상표현주의에는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이 중요한데, 이는 그림의 이미지보다는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순수한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을 말한다. 그리는 그 ‘행위’라는 몸짓을 통해 무의식의 무한한 가능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추상표현주의 작가로는 폴록,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폴록 이전에도 추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은 있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대표적이다. 칸딘스키는 회화가 어떤 대상을 재현해야 한다는 의무를 버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구체적인 피사체 대신 원, 면, 선처럼 순수한 도형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은’ 칸딘스키 그림에서도 최소한 사각형, 삼각형, 원통이라는 도형은 느낄 수 있다. 폴록은 한 발 더 나아갔다. 폴록이 그림을 그린 방식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 놓고, 캔버스 위를 종횡무진하며 말 그대로 물감을 뿌린다. 당연히 결과물은 혼돈이다.
폴록은 이 드리핑(dripping)이라는 새로운 회화적 기법을 도입하였다. 드리핑은 붓이나 주걱 등 도구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물감을 그대로 화면 위에 떨어뜨리거나 부어버리는 회화 기법을 의미한다. 폴록의 드리핑 기법은 무의식에 자율적인 활동과 힘이 있다는 심리학적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폴록은 드리핑 작업을 통해 그의 내적 리듬을 그림에 반영하였고, 그의 ‘액션페인팅’은 시작도 끝도 없는 행위의 지속을 보여주었다. 폴록의 그림들은 무질서한 그물과 같은 이미지를 준다. 그의 ‘행위’는 동일하지만, 재표현될 수 없는 독자적인 형태를 창조한다.
또한 폴록은 처음부터 올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을 시도하기도 한다. 폴록이 만들어낸 올오버는 그려진 그림의 상하좌우 구별이 없고, 어떤 특정 초점이나 중심부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화면의 전체가 고루 평등하게 평면으로 처리가 되어 있고, 색채 표현도 중시하지 않고 모두 동일한 물감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폴록이 이젤이 아닌 마룻바닥에서 그림을 제작하는 것이 단순히 드리핑을 위함은 아니다. 그림 화면이 이젤에 세워졌을 경우 수평으로 대면이 되고 흰 바탕과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상당히 큰 캔버스를 마루에 두면 그 그림 크기와 전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올오버 페인팅을 통해 폴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 올오버 페인팅 기법 같은 그림 표현 기법은 보호받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저작권법에 따라 그림저작물을 보호하고 있으나, 그림저작물을 그리는 표현 기법은 보호하지 않는다. 1990년부터 일관되게 법원은 “표현기법 자체나 그에 관한 아이디어가 아무리 독창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이는 만인의 공유의 지식재산으로 개방함이 타당하고 특정인의 독점적, 배타적 사용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은 저작권 관련 사건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내려진 판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표현기법과 아이디어는 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결론에 그치지 않고, 표현기법과 아이디어는 “만인의 공유의 지식재산”에 속하고 특정인의 독점적 배타적 사용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표현기법과 아이디어의 사용은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함을 적극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이나 올오버 페인팅 기법 그 자체는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은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것이다. 즉, 아이디어나 표현 기법 등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 기법을 영업비밀로는 볼 수 있을까?
‘영업비밀’이란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 여기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다’는 것은 그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시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그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을 말한다.
그런데 추상표현주의는 그림의 이미지보다는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순수한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핵심인 바, 추상표현주의의 핵심인 표현 기법을 비밀로 유지하려는 추상표현주의 작가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표현 기법을 영업비밀로 보호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글 |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변호사,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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