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현재)는 yBa(Young British Artists,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수장으로서 죽음과 공포라는 소재를 충격적인 작업 방식으로 시도한 작품들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작품에 덧없음, 헛됨 등을 상징하는 해골 및 동물 사체 등을 직접적으로 등장시켜 죽음의 미학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데, 예술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단시간에 관람객이 파악할 수 있도록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선호한다. 이를 통해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공포에 대해 가감 없는 충격을 주는 동시에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예술가로서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미술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키기도 하였다.
어쩌면 상당한 규모의 금액이 운용되는 시장으로서의 미술시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재까지 정부의 규제로 통제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먼저 작가의 작품 정보를 알아내는가가 예술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품이 미래수익을 기대하는 재무적 자산으로서 미적 효용성을 가진 자산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위와 같이 내부정보로 좌우되는 미술시장을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면 결국 통제할 수 있는 자는 화랑이나 딜러여야 할까? 사실 작품의 작가가 바로 진정한 통제자가 될 수도 있다. 작가에 의한 직접적인 통제가 미술품 유통시장 구조의 건전한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고 이상적인 균형관계를 흐트러뜨린다는 비판과 별개로, 데미안 허스트는 바로 이 부분을 사업가의 기질로 꿰뚫어 본다.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주요 작품을 대거 경매에 내놓는 주요한 사건을 만든다. 그는 자신의 주요 작업을 소장해왔던 찰스 사치가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직접 사치를 찾아가 그가 소장했던 자신의 작업물을 본인이 먼저 직접 구매하였다. 자신의 작업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경우 데미안 허스트를 세계적인 미술가로 키운 사치가 이제 허스트를 저버렸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고, 또한 허스트 본인도 본인의 작업물이 이곳저곳에 팔려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 잘 맞아떨어진 상황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거액에 다시 매입한 데미안 허스트는 자금을 회수하는 동시에 위기를 기회로 역전할 기발한 경매를 기획한다.
2008년 9월 런던의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데미안 허스트 단독 경매 <데미안 허스트 – 내 머릿속의 영원한 아름다움(Damien Hirst -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을 직접 진행한 것이다. 223점을 선보인 전체 경매는 낙찰 총액 1억1,157만6,800 영국 파운드(당시 환율을 적용하면 원화로 약 2,271억 원)를 달성하게 된다. 경매 마감 직후 배포된 소더비의 공식 보도에 따르면 총 223점의 매물 가운데 218점이 팔렸고, 경매사가 가져가는 수수료 등을 떼고, 실제 데미안 허스트가 가져간 경매 금액만 약 5천만 파운드(약 1,081억 원)라고 밝혔다.
미술시장은 일반적인 시장은 아니다. 백화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품목도 아니고, 경험 있는 미술품 수집가라도 미술품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 늘 다른 사람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품의 문제도 있지만 이를 떠나서라도 미술품이 갖고 있는 유일성(uniqueness)이라는 특징과 그 가격 산출의 문제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도 시장이며 미술품도 상품이다. 따라서 미술시장, 미술품도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배제하고는 미술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데미안 허스트는 바로 자본사회 내에 구현된 미술시장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이지 않은 특징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업가적 면모를 보였다. 그리고 단순한 사업가가 아닌, 게임체인저(game changer)형 혁신적 사업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게임체인저란 판을 뒤흔들어 시장의 흐름을 통째로 바꾸거나 어떤 일의 결과나 흐름 및 판도를 뒤집어 놓을 만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나 사건을 의미한다. 데미안 허스트는 미술 시장에서의 쇼맨이자 게임체인저형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예술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일부 작품 제작에는 관여하였으나 223점의 작품 모두를 혼자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 미술품이 ‘조수’ 등 지원 인력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이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인식하면서,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작품 제작에 있어서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 일부만 수행하고 나머지를 보조자 혹은 조수에게 맡기는 작가도 있고, 작가에 따라서는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조수가 하도록 시키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법원은 조수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와 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릴 법적 의무는 없다고 보고 있다.
또한 회화는 전통적으로는 조각, 설치미술 등에 대응하는 개념이지만 현대미술에서는 그 경계가 이미 무너졌으므로, 회화에 대하여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여 작가가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여야 한다고 볼 합리적인 근거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미술은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며 국경이 없다는 점에서 미술품도 세계적인 관점에서 이를 판단해야 하고, 특히 해외에서 시작된 팝아트는 더욱 그러하다.
즉 미술저작물을 창작하는 여러 단계의 과정에서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이 어느 단계에서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 외부에 나타났다고 볼 것인지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본래 이를 따지는 일은 비평과 담론으로 다루어야 할 미학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관한 논란은 미학적인 평가 또는 작가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 관한 문제로 보아 예술 영역에서의 비평과 담론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그 논란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여 저작권 문제 등이 정면으로 쟁점이 된 경우로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글 |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변호사,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