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고요하고 아스라한 여명, 신묘한 낙조의 여운, 장엄한 밤하늘의 깊이 그리고 거센 풍랑을 몰고 온 밤바다 혹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래톱… 김영화의 그림을 한마디로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한 화면의 추상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감정까지 느껴지고, 실감 나는 구상화라고 하기엔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정경(情景)이다. 마치 자연의 리듬을 활용한 무기교의 기교나 박석(薄石)의 미학이 연상된다.
무거운 고요함이 감돌면서도 청명하고 화려한 기운이 충만한 그림이다. 아마도 우리 옛말 중에 ‘검이불루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라는 표현을 빗대면 어떨까 싶다. 이 말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조선경국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이다. 한자 그대로 백제와 조선의 미(美)를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음”의 의미로 설명한 것이다. 김영화 그림 역시 그 연장선에서 바라보면 훨씬 편하게 와 닿을 듯하다.
최근 작품의 제목에 ‘MOMENT’라는 단어가 즐겨 사용된다. 김작가는 이를 ‘마법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뤄주는 신비한 순간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래서일까,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늘 명상하는 시간을 잊지 않는다. 생각으로 이미 완성한 ‘흉중구학(胸中丘壑)의 미감’을 실감 나게 옮기기 위함이다. 또한 직관적으로 선택된 색감의 깊이와 수묵의 우연한 효과가 음률적인 조화를 이뤄내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녀에게 그림은 무한한 사유와 명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김영화 작가를 소개할 때, 예술가 집안의 후손이란 점이 많이 언급된다. 우선 먼 조상으로 우리나라 전통 회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조선 영조시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의 후손이라고 한다. 호방하고 유려한 단원의 필치와 속되지 않게 아름다우며 청아한 수골청상(秀骨淸像)의 세밀한 표현법까지 폭넓은 화법 연구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직계로는 부산 무형문화재 13호 사기장 도봉(道峰) 김윤태(金允泰, 1936~2012) 도예가가 부친이다.
김윤태 작가의 친가는 4대째, 외가는 9대째의 도예 집안으로 김영화 작가에게도 이러한 예맥(藝脈)의 기운이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15세 무렵부터 도자기에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확장된 작품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김영화 작가에게 오는 12월 2일부터 30일까지 미국 뉴욕 첼시의 하이라인나인갤러리(high line nine gallery)에서 진행되는 개인전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작가 생활 통틀어 60회째를 맞는 개인전이기 때문이다. 연간 평균 최소 두 번의 개인전을 치러온 셈이다. 이번 뉴욕전시도 역시 크고 작은 신작 45점을 선보인다.
먹색이 지닌 신묘한 깊이와 다양한 색조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다. 대개의 작품은 화면이 가로로 크게 삼등분된 구성이다. 주로 중간 띠 부분의 역동적인 실루엣을기준으로 위아래가 대칭을 이룬 형국이다. 마치 천지가 거울이되어 서로를 비추며 균형을 이룬 조화로움이 특별하다.
줄곧 김영화 작가는 동양철학을 품은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해왔다. 그런 면에서 김 작가의 그림을 ‘만물발생 이전의 원초상태인 카오스(chaos)가 새로운 질서를 찾는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 극적인 순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결국 김영화 작가의 작품 <○○○ MOMENT>는 제각각의 철학을 시각화하여 그려낸 작품들이다. 감상자 저마다의 마음속으로부터 불러일으킨 깊은 색의 단상, 강렬한 수묵 효과와 황금빛 질감의 관계항은 기적ㆍ환희ㆍ성공ㆍ희망 등 여러 경로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선순환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다.
작가소개 | 김영화(1965~)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 한국화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59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160여 회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문화일보에 14년째 주1회 골프 테마의 그림을 연재 중이다. 주로 골프장 관련 에피소드를 간결한 문구와 필체로 표현해 자기 계발 삽화의 기능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백제 제25대 무령왕 표준영정(국가지정 99호 지정)을 제작했다. 2009 녹색지도자상, 대한민국 100인 선정, 2010 올해의 예술인상, 2018 한국디지털문화진흥회 문화예술지도자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2019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글 | 김윤섭
명지대 미술사 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아이프aif 미술경영연구소 대표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