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잇는 카논의 선율
[아츠앤컬쳐] 라디오 문화에 젖어 있던 7080세대에게 폴 모리아(Paul Mauriat)의 이름은 너무나 익숙하다. 이지 리스닝계의 대부이자 프렌치 인베이전(french invasion)의 선발주자인 폴 모리아의 명반들은 그들의 젊은 시절을 풍요롭게 했기 때문이다. 이 명반들은 여러 면에서 음악시장의 판도를 바꿨는데, 무엇보다 가사를 지니지 않은 경음악이 노래와 똑같이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수많은 폴 모리아의 음반들 중 68년 필립스 레코드가 출시한 싱글 <Love Is Blue(L'amour est bleu)>는 그의 음악 성향을 대표하는 멋진 작품이다.
폴 모리아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편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쳄발로 연주자로 활동했다. 그는 마르세이유 태생으로 고전음악을 전공하였는데, 파리로 이주한 후 자신의 밴드를 창단해 1950년대부터는 유명 샹소니에인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와 모리스 셰발리에(Maurice Chevalier)의 음악을 감독하였다. 약 130편가량 아즈나부르의 샹송을 편곡하기도 한 그는 60년대에는 폴 모리아 악단(Le grand orchester de Paul Mauriat)을 설립, 필립스 레코드를 위한 수백 장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중 명반으로 꼽히는 여러 음반에는 대표작 ‘사랑은 푸른빛’이 수록되어 있다. 쳄발로와 일렉기타, 드럼, 스트링, 백 보컬이 적절히 결합된 이 곡은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프랑스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사실상 폴 모리아의 편곡 능력은 명곡들뿐 아니라,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의 재부상으로 입증되었다. 그는 원곡에 새로운 사운드를 결합함에 있어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충족시키는 전문가였다. ‘사랑은 푸른빛’ 역시 폴 모리아의 이러한 편곡 능력에 톡톡히 덕을 본 노래라 할 수 있다.
‘사랑은 푸른빛’은 본래 독일에서 활동하는 그리스의 여가수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의 노래였다. 사랑의 희로애락을 색깔에 비유한 이 노래는 앙드레 팝(André Popp)과 삐에르 쿠르(Pierre Cour)가 만들었다. 비키는 17세인 1967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이 노래를 불러 4위에 랭킹되었으며, 신선한 외모와 표현력으로 주목받았다. 그녀의 활동에 교두보가 된 이 노래는 곧 8개국의 언어로 녹음되어 대략 19개국에 출시되었다.
“푸른빛, 푸른빛, 사랑은 푸른빛이죠. 사랑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은 푸른빛이죠. 물처럼, 흐르는 물처럼 내 마음은 그대를 향해 흘러요... 회색빛, 회색빛, 사랑은 회색빛이죠. 그대가 사라질 때 내 마음은 젖어들죠.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처럼 그대의 부재로 인해 흘러요.”
가사가 드러내듯 ‘사랑은 푸른빛’은 재기발랄하고 재능 넘치는 순수한 소녀 비키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그녀의 아버지 레오 레안드로스(Leo Leandros)는 당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프로듀서였는데, 딸의 활동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기타와 노래, 발레, 연기 등을 연마한 비키는 5년 후인 1972년에 ‘너 다음에(Après toi)’로 유로비전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재능과 가창력을 증명하였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다양한 언어 버전으로 세계적 인기를 누렸지만, 데뷔곡 ‘사랑은 푸른빛’의 인기는 폴 모리아에게 힘입은 바 크다. 폴 모리아의 세련된 편곡은 비키의 노래에 날개를 달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사랑은 푸른빛’의 특징은 고전 악기인 쳄발로와 스트링, 그리고 현대 악기인 기타, 드럼이 빚어내는 절충적, 이국적 사운드에 있다. 여기에 더해진 단순한 코러스 역시 바로크와 모던을 아우르며 곡에 생기를 부여한다. 폴 모리아는 ‘사랑은 푸른빛’으로 가사를 능가하는 선율의 힘과, 동시에 과거를 모방한 현재의 소리를 충분히 들려주었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