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 est trop tard
더디 가기를 선택해야 할 때
[아츠앤컬쳐]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는 샹송 계의 음유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음유시인은 웅변가와는 달리 나긋하고 조용한 어조로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남긴다. 조르주 무스타키가 딱 그러한데, 이는 그의 자작곡들이 주는 고요하고 그윽한 울림 때문이다. 그는 300편이 넘는 샹송 작가이면서 늘 향수와 멜랑꼴리를 전달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사색적이면서도 감수성을 잃지 않는 그의 노래 중 1969년 작 ‘너무 늦었어요’는 유일하게 그의 어린 딸을 언급한 노래로 유명하다. 제목이 알려주듯 가사는 ‘붙잡을 수 없이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데 그 이면엔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다.
“내가 잠자는 동안, 꿈꾸는 동안, 시간은 지나갔고 이젠 너무 늦었어요. 어린 시절이 지나고 내일이 다가오듯 시간은 자꾸자꾸 흘러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하지만 난 여전히 살아가고 사랑도 하고 또 기타를 들고 노래도 하죠. 내 어린 시절을 위해, 그리고 내 아이를 위해... 어쩌면 내가 노래하는 동안,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또 꿈을 꾸는 동안, 아직 시간은 남아있어요.”
무스타키의 부드럽고 은근한 어조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취할 수 있는 선택적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삶과 꿈, 자유와 사랑을 쫓느라 지나친 순간들을 이제부터라도 소중히 가꾸라’는 메시지는 그윽한 톤으로 마음에 닿는다. 그의 많은 샹송에서 느끼지는 이러한 울림은 늘 진실을 긍정적으로 풀이하는 그의 시어(詩語)들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시어들은 에디트 피아프나 프랑소아즈 아르디, 이브 몽땅, 티노 로씨, 줄리에뜨 그레코 등 많은 가수에 의해 불려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거류민(Le métèque)’, ‘나의 고독(Ma solitude)’, ‘나의 자유(Ma liberté)’, ‘삶을 위한 시간(Le temps de vivre)’, ‘신사분(Milord)’, ‘우편배달부(Le facteur)’ 등 수많은 그의 가사에는 고단하고 타성에 젖은 삶을 위로하는 은유와 해학이 듬뿍 들어있다.
사실 필자에게도 무스타키의 ‘너무 늦었어요’는 <적(L’ennemi)>이나 <주막에서>에 담긴 보들레르나 김용호의 비애감을 잊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간의 만행에 억눌리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작은 지혜를 그의 온건하고 다정한 목소리 속에서 듣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보통의 사람들에게 4월은 꽃들이 만개하는 순간의 호사를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굳이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4월은 그 찬란함에 비해 실상은 감정의 가사 상태에 억눌리기 쉬운 계절이기 때문이다. 늘 더 바쁘고, 피곤하고, 쉴 틈 없는 시간 속에서라도 한 번쯤은 달리기를 멈추고 숨 고르기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무스타키가 딸 피아(Pia)를 떠올리며 쓴 가사를 듣다 보면 어쩌면 더 멀리 가는 방법을 깨닫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너무 늦었어요’를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