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된 한국미의 새로운 발견
[아츠앤컬쳐] 오랫동안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새롭게 재해석해온 서수영 작가가 신작 30여 점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서수영에게 가장 큰 과제는 ‘한국 전통회화에 담긴 특유의 감성미를 어떻게 현대미술로 재해석할 것인가’였다.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잇는 과정을 넘어, 동시대의 감성적 코드와도 교감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의 한국미’를 찾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서수영 작가의 행보는 우리 현대인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며, 새로운 미적 경험들을 통해 한국 회화의 자긍심을 다시 전하고 싶은 바람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개관 40주년을 맞은 대표적인 사립미술관 한국미술관(관장 안연민ㆍ장은재)의 초대전으로 진행된다. 이미 10년 전 ‘황실의 품위’전으로 서수영 작가와 인연을 맺은 한국미술관은 “한국이 지닌 무한한 전통적 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우리의 가슴에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새로운 울림을 전해주는 작품”이란 점을 높이 평가해 초대전을 기획했다고 전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조선의 백자와 달항아리 모티브를 한지 부조 작업으로 되살린 <보물의 정원> 시리즈이며, 전시의 제목도 같다.
서수영은 조선백자의 형상 안에 지금까지 실험해온 ‘한국적 미감의 다양한 해석’을 구현해냈다. 오랜 기간 채색화에 매진했던 노하우를 살려 고도의 세밀함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금채화 기법을 더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흔히 조선시대 백자 혹은 청화백자는 문인 정신의 표상으로 담백한 미학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는데, 여기에 서수영만의 절제된 화려함을 더했다.
미술평론가 안현정은 “서수영의 최근작들은 한국화나 동양화라기보다 회화적 마티에르가 스미는 독특한 구조에서 ‘K-Fine Art’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작품 사이에 보이는 태극 문양들은 ‘근대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묻기 위함이고, 17~19세기 국보(國寶) 위주의 백자가 눈에 띄는 것은 ‘최고 미감을 향한 최선의 과정’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 작가는 조선왕조의 왕실 그림으로 출발했지만, 2015년 영은미술관의 ‘태극기 전시’ 이후 작품 주제에 대한 관심사가 전환되었다. 한국 전통미의 관심을 잇되, ‘한국의 마음을 담아낸 진짜 미감을 어떤 표상으로 담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된 것이다. 그 긴 고민의 끝이 바로 ‘조선의 청화백자’였다.
청화백자는 주로 왕실이나 고위 기관에 납품하던 관요에서 만든 최고급 백자이다. 부드러운 곡선미와 풍만한 부피감, 그 위에 최고 수준의 화원의 그림까지 얹힌 백자의 자태는 숭고함 그 자체로 통할 만하다. 매화와 나뭇가지를 향해 날아드는 새,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의 리듬감까지 포착한 대나무 그림 등 볼수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취가 일품이다. 마치 흰 화선지에 묘사한 한 폭의 화조화처럼 생동감이 살아 있는 청화백자의 무늬를 서수영은 ‘한지 부조’로 되살리고, 수간채색이나 금채로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화면 전체를 차지한 달항아리에는 매화를 배치했지만, 그 주변으로 바람에 목도리를 휘날리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그려 넣기도 했다. 매화나 어린 왕자는 마치 이상향을 동경했던 조선 사대부 문인을 대신하는 듯하다. 또한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사막 여우도 등장한다. 여우는 작별을 고하는 어린 왕자에게 비밀을 말한다. “잘 가. 어린 왕자. 내가 마지막으로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이건 아주 간단한 거야. 무엇이든지 마음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거든.” 서수영 작가 역시도 여우의 비밀이야기에 빗대어 우리가 꿈꿔온 이상의 만남을 ‘보물의 정원’ 그림으로 안내하고 있다.
서수영(1972~)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Galerie Visconti(France), Artgate (USA), longsun art gallery(China), 한벽원미술관, 영은미술관을 비롯해 30여 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 회의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또한 KIAF SEOUL, 2012 Citizen Art Shanghai(China), Hong Kong Art Fair (Hong Kong), SCOPE (UK) Art Show등 30회 이상의 국내외 아트페어에도 참가했다. 2015년도에 문화예술융성사업으로 진행한 근대 이후 제작된 배채기법 작업 중 가장 큰 대작을 완성하여 한국 미감의 정수를 새로운 세대의 감성으로 보여주었다. 단행본 『그림 속에 나타난 금 이야기』를 저술하였고, 경기문화재단, 용인문화재단,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우수창작작가에 선정, 안견청년작가 대상, 최우수 논문상, 커리어 리더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영은미술관, 한국미술관 등 여러 곳에 소장되었고, 동덕여대 회화과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글 | 김윤섭
명지대 미술사 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아이프aif 미술경영연구소 대표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