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n Terry_George Frederic Watts(1864추정)
Ellen Terry_George Frederic Watts(1864추정)

 

[아츠앤컬쳐] 조지 프레드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1817~1904)는 상징주의(Symbolist) 운동과 관련된 영국의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상징주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난 예술 사조로, 주관을 강조하고 상징화하여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며, 성서의 이야기나 신화를 그린 작품이 많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1826~1898) 등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와츠도 주로 초상화, 풍경화, 그리스 신화 및 성경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와츠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1819~1901)의 통치 기간 동안 가장 위대한 예술가(The Last Great Victorian)라는 표현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와츠의 생애가 빅토리아 시대(1837~1901)와 거의 일치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사명과 철학이 빅토리아 시대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시대의 주류를 따르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의 그림은 빅토리아 시대의 핵심 가치였던 도덕성, 종교, 인간성의 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왕립 아카데미(Royal Academy)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도 걸었다. 그는 예술이 엘리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ope_George Frederic Watts(1886)
Hope_George Frederic Watts(1886)

한편, 와츠의 결혼 이야기는 그의 삶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로, 특히 그의 첫 번째 결혼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개인적인 불행의 어쩌면 대표적인 사례다. 초상화 <엘런 테리(Ellen Terry)>(1864년 추정)가 그려지던 1864년에 엘런 테리(Ellen Terry)(1847~1928)는 열여섯 살의 어린 신부가 된다. 테리가 결혼한 남자는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인 와츠였다. 당시 와츠는 만 46세, 테리는 불과 만 16세였다. 두 사람은 극작가이자 공통의 친구인 톰 테일러(Tom Taylor)(1817~1880)를 통해 만나게 되었고, 와츠는 그녀의 젊고 활기찬 모습에 매료된 것이었다.

런던(London) 중심부의 메릴본(Marylebone)에서 태어난 와츠는 어릴 때 몸이 약해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많은 시간을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보냈던 조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테리는 자라난 환경부터가 와츠와 정반대였다. 연극인 가정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으며, 와츠를 처음 만난 열다섯 살에는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탔다. 와츠는 조용하고 철학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테리는 활발하고 자유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와츠는 심오한 상징주의 화풍과 도덕적 메시지를 중시했지만, 테리는 무대에서 연극적 감성과 자유로운 표현을 즐기는 배우였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 1년 만에 별거에 들어갔고, 와츠는 테리가 다시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지급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연극계로 돌아갔고, 와츠와의 결혼 생활은 완전히 끝이 나게 된다.

Self Portrait, Aged 17_George Frederick Watts(1834)
Self Portrait, Aged 17_George Frederick Watts(1834)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만 16세 미성년자와의 결혼이 가능할까?

가족은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로서 혼인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혼인은 가족을 형성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데, 혼인과 관련된 내용은 민법에 규정되어 있다. 현행 민법은 법률혼주의를 유지하고 있어 혼인은 적법한 신고를 함으로써 인정되고 보호된다. 현행 민법 ‘제4편 친족’ – ‘제3장 혼인’에서 약혼에 관한 규정(제800조부터 제806조), 혼인에 관한 규정(제807조부터 제833조), 이혼에 관한 규정(제834조부터 제843조)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민법상 성년, 즉 성인은 자유로이 약혼과 혼인을 할 수 있다. 우선, 성년에 대해 찾아보면, 현행 민법 제4조에서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고 규정하여 성년을 19세에 이른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 민법은 1960년에 제정되었는데, 제정 당시 민법 제4조에서 ‘만 20세로 성년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며, 성년 연령에 관한 규정은 51년간 유지되었다. 이후 2011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고 규정하여 성년의 연령을 낮췄다. 성년연령의 변화는 청소년의 조숙화에 따라 성년연령을 낮추는 세계적 추세와 함께 사회적,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려는 목적이었다. 당시 아예 성년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논의까지 있었으나, 이 경우에는 고등학교 3학년에 미성년자와 성년자가 혼재하는 점 등을 들어 19세로 결정한 것이다.

19세에 이르지 못한 자가 미성년인데, 우리나라 민법은 제807조에서 18세가 된 사람은 혼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미성년자인 경우에도 혼인을 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혼인을 함에 있어서 18세가 된 사람이라는 최저연령을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미성년자가 혼인을 하는 경우에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함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부모 중 한쪽이 동의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에는 다른 한쪽의 동의로 가능하며, 부모가 모두 동의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에는 미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함).

즉, 성년인 자만이 혼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미성년인 경우에도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부모 또는 미성년후견인의 동의 하에 혼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민법이 1960년에 제정되었는데, 민법 제정부터 2007년까지는 남자 만 18세, 여자 만 16세에 달한 자는 부모 또는 후견인의 동의 하에 혼인 할 수 있었으나, 2007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남녀의 구분 없이 만 18세가 되면 혼인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미성년자의 약혼 또는 혼인에 있어서 부모 또는 미성년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변경되지 않았다.

따라서 와츠와 테리는 현행 우리나라 민법 규정에 따르면 혼인을 할 수 없다. 테리는 혼인적령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부모의 동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혼인할 수 없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해당 혼인은 민법에 따라 취소할 수 있다.

민법 제817조는 나이위반 혼인의 취소청구를 규정하고 있는데, 혼인의 당사자가 혼인적령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혼인 내지는 혼인적령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미성년자로서 부모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혼인이라면 당사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그 혼인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한편, 민법 제819조는 동의 없는 혼인에 대한 취소청구에 관해 별도로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미성년자로서 혼인적령이었으나 부모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혼인의 경우, 해당 혼인 이후 그 미성년자인 당사자가 19세가 된 경우 또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경우 등에는 그 취소청구를 할 수 없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 변리사 

법학(J.D.), 기술경영학(Ph.D.)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