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며칠 전,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을 찾았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 세계를 넘어, 예술과 삶을 진심 어린 언어로 풀어낸 한 권의 에세이, 2024년 개정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읽은 후의 깊은 울림 때문이었다. 이 책은 예술가 김환기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예술로 형상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자, 예술가들에게는 지침서와도 같은 책이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야기는, 그가 첫 전시를 준비하며 “어차피 팔리지 않을” 작품들을 내걸 때의 심정과, 프랑스 유학 시절 겪은 한 편의 아쉬운 일화였다.
그는 파리에서, 부인 김향안과 함께 센강변의 한 갤러리에서 조르쥬 앙리 루오(Georges Henri Rouault, 1871~1958)가 1935년에 완성한 명함 크기 정도의 작은 그림을 발견한다. 작은 크기 덕분에 쉽게 구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가격을 묻자 예상보다 두 배나 높은 1,000달러라는 말을 듣고는 결국 구매를 망설인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밤새 그림의 인상과 여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다음 날 결국 두 사람은 구매를 결심한다. 하지만 이미 그 그림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 그는 훗날 이 일을 회상하며, 그 아쉬움이 평생 마음에 남았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루오의 작품 실물을 본 적은 없지만, 그의 글을 통해 루오라는 작가에게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조르쥬 앙리 루오는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교적 성찰과 인간 내면의 고통을 진한 색채와 거친 윤곽선으로 표현한 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구원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으며, 독특한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을 연상시키는 깊이 있는 색감이 특징적이다. 그의 그림에는 늘 진실된 인간성과 숭고함에 대한 갈망이 배어 있다.
나 역시 김환기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30개국 100여 도시를 여행하며 수많은 예술품을 접하고, 다양한 인연들과 예술품 소장의 기회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결정의 순간에는 망설임이 앞섰다. 그 결과는 늘 기회를 잃은 뒤의 아쉬움으로 남았고, 때로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새겨졌다.
그렇다. 인연도, 예술도, 삶의 기쁨도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을 떠올릴 때, 나는 오늘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김환기가 끝내 소장하지 못한 루오의 작품과 그 순간을 다시 불러내며 그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글 | 김남식
춤추는 남자이자, 안무가이며 무용학 박사(Ph,D)이다. <댄스투룹-다>의 대표, 예술행동 프로젝트 <꽃피는 몸>의 예술감독으로 사회 참여 예술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하는 <멘탈 아트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예술과 재난 프로젝트>의 움직임 교육과 무용치유를 담당하며 후진양성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