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그뤽(Philippe Geluck)의 세계
[아츠앤컬쳐]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러나 단단한 사유의 깊이를 지닌 유머, 바로 필립 그
Philippe Geluck “At the Pollocks” Silkscreen 70×70㎝, 2018

[아츠앤컬쳐]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러나 단단한 사유의 깊이를 지닌 유머, 바로 필립 그뤽의 그림이 지닌 매력이다. 지난 5월 27일, 작은 전시 하나가 조용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전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둥글둥글하고 엉뚱한 매력을 지닌 고양이 캐릭터. 그는 특유의 유쾌한 위트로 관람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과 철학적 사유를 함께 전달했다.
작품 속 고양이는 언제나 차분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던진다. 화면 한쪽에 말풍선으로 등장하는 그 짧은 문장들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삶을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부자는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잠을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풀밭에 누워 수천 개의 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 말풍선 아래, 고양이는 팔을 배고 누운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렇게 구성된 30여 점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 선보였다. 이 중, 유독 시선을 끈 한 작품이 있다. 바로 <At the Pollocks 2018>.
이 작품은 1954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필립 그뤽의 예술적 정체성과 유머가 절묘하게 결합된 대표작 중 하나다. 그뤽은 만화가, 화가, 배우, 유머 작가로 활동하며, 특히 『르 깟(Le Chat)』 시리즈로 프랑스어권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르 깟』은 1983년 벨기에 일간지 Le Soir에 처음 연재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유럽의 대표적 시사 만화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선, 최소한의 색채,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쉬운 언어로 어려운 이야기를 전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그뤽의 힘이다.
<At the Pollocks>는 가로 70cm, 세로 70cm 크기의 실크스크린 작품으로,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에 대한 유쾌한 오마주이자 풍자이다. 식탁에 앉은 세 마리 고양이. 테이블보 위에는 색색의 물감이 흩뿌려져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폴록 스타일’의 드립 페인팅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에서 고양이들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지저분하게 먹는 애들은 처음 봐!” “지금은 폴록네 집이 아니거든!”
짧지만 명확하다. 폴록의 회화적 언어를, ‘엉망진창 식사’라는 일상적 경험에 빗댄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도, 현대미술의 수용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필립 그뤽은 예술을 어렵고 고상하게만 말하는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상 속 언어와 경험을 통해 동시대성을 풀어낸다.
많은 예술가들이 복잡한 철학과 지적 허영으로 무장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집중할 때, 그뤽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대중의 지평에서 출발해, 독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통해 그 이상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바로 그 점이, 이 ‘엉뚱한 고양이’가 단순한 만화를 넘어 하나의 철학으로 읽히는 이유다. 그의 작품 <폴록의 집에서Chez les Pollock(아크릴, 캔버스, 119×119cm)>는 2019년 세계 최고의 경매회사인 크리스티 경매에서 82,000 유로에 낙찰되었다.
글 | 김남식
춤추는 남자이자, 안무가이며 무용학 박사(Ph,D)이다. <댄스투룹-다>의 대표, 예술행동 프로젝트 <꽃피는 몸>의 예술감독으로 사회 참여 예술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하는 <멘탈 아트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예술과 재난 프로젝트>의 움직임 교육과 무용치유를 담당하며 후진양성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