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속에 떠도는 유랑자의 혼

 

[아츠앤컬쳐] 여름의 태양은 주위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다는 유리처럼 반짝인다. 여행 가방에는 어느새 수영복과 슬리퍼가 담기고 스마트폰에는 플레이리스트가 채워지는 순간이다. 이어버드 사이로 흘러나오는 격렬한 기타 리프, 내 여름의 배경음악은 언제나 ‘Misirlou’로 시작된다. 이집트 출신의 여자를 뜻하는 ‘Misirlou’의 강렬하고 이국적인 느낌은 이 곡이 오스만 제국 시기의 음악이란 사실을 잊게 한다.

딕 데일(Dick Dale)의 서프 록(Surf Rock)으로 유명한 ‘Misirlou’는 1994년 영화 <펄프 픽션(Pulp Fiction)>의 오프닝 크레딧에 사용되어 사랑받았다. 파격적인 연출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과 다문화적 정체성을 음악에 담아낸 딕 데일의 선택은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강렬한 오프닝 장면을 탄생시켰다. 실제 레바논계 미국인이었던 딕 데일의 창의성은 ‘Misirlou’를 단순히 서양화된 오스만 민속음악에 머물게 하지 않고, 1960년대 서프 록 장르의 새로운 혁신으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손에서 다문화적 뿌리를 지닌 한 선율이 일렉기타의 속도감과 에너지로 재해석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변모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이러한 다문화적 융합은 이미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Misirlou’의 원형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그리스, 터키,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이집트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음악적 전통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집트 여인을 찬미하는 가사는 당시 사람들의 이집트에 대한 신비롭고 이국적인 환상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Misirlou’는 동 지중해 지역의 음악적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원곡자의 신원은 명확하지 않다. 또한 오랜 세월 구전으로 전해진 노래로 초기에는 연주곡으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민족과 지역 음악가들이 각자의 스타일을 담아 연주했고, 20세기 중반에야 그리스, 레바논, 터키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어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래에 관해 터키의 스미르나이카(Smyrnaika)와 그리스 렘베티카(Rembetika) 음악들이 언급된다. 그러나 20세기 초,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갈등과 격동의 역사 안에서 두 음악은 융합되었고, 그 흔적은 1927넌 초기 렘베티카 녹음본에서 발견되었다.

 

“나의 미시를루, 당신의 달콤한 눈길과 꿀처럼 촉촉한 입술은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불꽃을 피웠네.

내 사랑이여! 마법처럼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미칠 듯 견딜 수 없어라!

검은 눈동자의 당신을 아라비아 강 너머에서라도 훔쳐 오리다!”

‘Misirlou’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를 넘어 유랑자의 자유로운 영혼을 관통하는 음악이다. 이는 노래가 단순히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국경과 정체성을 넘나들며, 음악적 유랑자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Misirlou’는 오스만 제국의 다문화적 토양에서 태어나, 디아스포라의 파도에 실려 지중해를 떠돌았고, 마침내 미국 서부 해안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여정에 공통으로 흐르는 열망은 다름 아닌, ‘자유’라는 이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행의 동반자인 ‘Misirlou’의 멜로디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경계를 넘어 유랑해온 영혼의 흔적이며, 우리가 찾는 자유에 대한 갈망의 목소리이다. 과거 이국적인 리듬, 낯선 음계 속에서 빚어진 한 가락이 현대 서프 록의 클래식으로 부활했듯 내 귀를 스치는 이 선율은 미래의 새로운 파도 아래에서 다시 숨 쉴 것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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