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위를 순항하는 서정

 

[아츠앤컬쳐] 바다는 늘 여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하늘이 더욱 투명해지는 계절이 오면 오히려 가을의 얼굴을 닮아간다. 햇살은 조금 더 기울어지고, 바람은 서늘해지며, 파도는 부드럽게 밀려왔다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물결이 지나는 자리, 그야말로 바다의 보사노바(bossa nova)가 시작된 것이다. 보사노바의 황금기에 태어난 ‘O Barquinho’는 바로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물결을 떠도는 작은 배가 바다의 거대함을 무력화시키듯 ‘O Barquinho’도 적은 몸짓으로 순간의 평화를 속삭인다.

‘O Barquinho’는 호베르토 메네스칼(Roberto Menescal)과 호나우두 보스콜리(Ronaldo Bôscoli)의 곡으로 1961년 발표되었다. 보사노바의 대중화 시기에 태어난 이 곡은 1960년대 브라질 중산층과 신세대 사이에서 도시적인 세련됨과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었다. 포르투갈어로 ‘작은 배’를 뜻하는 이 곡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 삶의 느림과 평화로움을 상징한다. 반복적인 보사노바의 리듬 위에 펼쳐진 기타의 세밀한 스트로크와 절제된 보컬의 속삭임은 청자를 유영하는 작은 배에 태운 듯 유유히 물결 위를 순항한다.

“빛의 날, 태양의 잔치, 푸른 바다를 미끄러지듯 지나는 작은 배. 갑작스런 우리의 노래가 바다를 가로지를 때 태양은 배와 햇살에 입맞춤하네. 푸르른 날 바다에서 돌아온 태양이 희미해지며 노래를 부추기네. 파란 하늘, 남쪽 섬들, 그리고 작은 배. 마음은 노래 속으로 미끄러지고 작은 배가 오후를 불러올 때 모든 것은 평화롭네.”

‘O Barquinho’는 원곡 가수인 마이사 마타라조(Maysa Matarazzo)의 목소리로 잘 알려졌지만, 여러 버전을 따라가다 보면 보사노바의 흐름과 음악사적 맥락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는 마이사와 나라 레앙(Nara Leão)에서 시작하여, 주앙(João)과 아스투르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 스탄 게츠(Stan Getz)를 거쳐,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과 오스카르 카스트루-네베스(Oscar Castro-Neves)에 이르는 흐름으로, 브라질 현지에서 뉴욕을 지나 전 세계로 이어지는 보사노바의 궤적이다. 이는 한 곡이 여러 시대를 거치며 담아온 음악적 변화를 유추할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마이사와 나라 레아우의 버전에는 초기 보사노바의 서정성과 담백함이 담겨있는 반면, 지우베르트 부부와 스탄 게츠의 음악에는 재즈와 결합된 보사노바의 유동성과 세련됨이 묻어난다. 이어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빙의 버전에는 화성적 정교함이 녹아있고, 카스트루네베즈에 이르러는 연주 중심의 재해석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O Barquinho’는 시대와 공간을 관통하는 예술적 흐름을 드러내면서도 물결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작은 배처럼 변치 않는 평화와 서정을 그대로 간직한다.

‘O Barquinho’ 이후 메네스칼과 보스콜리는 ‘Nos e o Mar(우리와 바다, 1962)’, ‘Rio(리우, 1963)’, ‘Telefone(전화, 1963)’, ‘Você(당신, 1964)’, ‘A Volta(귀환, 1968)’ 등 60년대 정서를 대표하는 보사노바들을 발표했다. 이 곡들은 어떤 면에서 ‘O Barquinho’를 중심으로 물결 위를 떠다니는 작은 배의 여정처럼 느껴진다. 이는 노래가 바다와 함께 공감하고, 사람과 함께 소통하며, 담백한 서정성과 세련된 유연함으로 기쁨과 슬픔의 단상들을 관조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중 첫 항로인 ‘O Barquinho’는 물결 위에서 속삭이는 음률처럼 느림과 평화, 그리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는 음악적 출발점이 되어 준다. 결국 이 여정은 단순한 음악적 나열이 아니라, 60년대 브라질 감성과 감각을 담은 보사노바의 항해이자, 오늘날까지 평화의 순간을 전하는 매혹적인 여정으로 남는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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