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위에 핀 꽃

 

[아츠앤컬쳐]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피어난 플라멩코는 삶의 비애와 환희를 한데 어우른 영혼의 음악이다. 그중 말라가 지역의 숨결을 짙게 품은 곡이 바로 라스 미가스(Las Migas)의 ‘Tangos de la Repompa’다. 2004년에 결성된 라스 미가스는 1950년대 말라가 플라멩코의 전설적 가수인 라 레폼파(La Repompa)의 이름을 제목에 담아 헌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라 전통 위에 피어난 꽃처럼 자신들의 음악이 레폼파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는 선언이기도 하다. 레폼파는 불과 22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여성의 감성과 삶을 노래에 절절히 녹여낸 말라가식 플라멩코의 상징적 인물이다.

‘Tangos de la Repompa’라는 제목은 얼핏 아르헨티나 탕고를 떠올리게 하지만, 플라멩코의 가장 오래된 리듬 중 하나로, 4/4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흐름 속에서 즉흥적 무용과 손뼉 리듬인 팔마스(palmas)가 어우러지는 형식이다. 이 리듬은 깐떼 끼꼬(cante chico)로 비교적 밝고 유쾌한 노래 범주에 속하며, 생동감 있는 에너지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Tangos de la Repompa’가 지닌 감성은 탕고스의 틀을 지키되 말라가 특유의 서정성과 내면의 정서를 절묘하게 녹여낸 칸타오라(cantaora)다. 따라서 그녀의 이름이 거론된 ‘Tangos de la Repompa’는 빠르고 유동적인 리듬 안에 깃든 말라가의 정서이자 플라멩코의 숨결이다.

라스 미가스는 “빵부스러기들”이라는 뜻으로 서로 다른 예술적 뿌리를 지닌 네 명의 여성이 이루어낸 조화로움을 은유한다. 이는 마치 흩어진 조각처럼 보이지만 함께 모였을 때 비로소 하나의 맛과 이야기를 완성한다는 의미이다. 라스 미가스는 2004년 마르타 로블레스(Marta Robles)를 중심으로, 이사벨 비나르델(Isabel Vinardell), 리사 바우스(Lisa Bause), 실비아 페레즈 크루스(Silvia Pérez Cruz)에 의해 결성되었고, 몇 차례의 멤버 교체에도 지금까지 ‘네 개의 목소리, 하나의 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대표곡인 ‘Tangos de la Repompa’는 전통의 뿌리 위에 피어난 꽃봉오리와 같이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예술적 개화를 보여준다. 이들은 말라가식 탕고스의 형식적 틀은 존중하되 현대적인 감수성과 새로운 전개 방식으로 곡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인트로와 코플라스, 브릿지를 오가는 구조와 라스 미가스 특유의 서사적 전개 또한 매력적이다. 음악적으로는 정제된 기타 인트로와 섬세하게 깔리는 바이올린 선율이 도입부를 신선하게 열며, 코플라스가 여성의 감정선을 시적 단위로 풀어낸다. 연주에서도 플라멩코에서 흔한 퍼커시브 기타 리듬보다는 절제된 터치와 섬세한 감성이 또렷이 드러난다. 특히 플라멩코 구성에서 드문 바이올린 선율이 스페인 민속음악과 유럽 클래식의 절묘한 융합을 이루어 낸다. 보컬 또한 전통적 플라멩코의 깊고 거친 톤보다는 섬세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레폼파식 감성의 내밀하고 유려한 해석을 완성한다. 더해진 카혼과 팔마스 또한 곡의 리듬적 골격을 견고히 다지며, 탕고스 특유의 생동감을 부각시킨다.

‘Tangos de la Repompa’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한 여인의 감정선이 오롯이 담겨있다. 절망에서 자각으로, 분노로까지 이어진 감정의 궤적은 레폼파 시대의 여성이 그러했듯 오늘날의 여성 또한 사랑의 고통과 상실에서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레폼파 시대의 여성상이 운명 앞에 눈물짓는 순정 자체였다면, 라스 미가스의 여성상은 사랑의 피해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자아를 재구성해 나가는 삶의 주체로 변모한다. 노래의 가사 속에는 슬픔과 그리움, 분노와 선언, 붕괴와 저항이 서로 교차하며, 여성의 내면을 새롭게 조명하는 현대적 서사가 직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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