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ait of Chekhov_1898_by_Osip_Braz
Portait of Chekhov_1898_by_Osip_Braz

2020년은 세계적인 대문호 체홉(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의 탄생 160주년이 되는 해다. 체홉은 러시아의 단편 작가이자 극작가로, 19세기 작가 중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세계 3대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오늘날에는 셰익스피어, 디킨스와 더불어 그의 작품이 가장 많이 연극과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Young Anton_P_Chekhov in country clothes
Young Anton_P_Chekhov in country clothes

지금까지 체홉의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왔지만, 체홉의 개인사 중에 그의 사랑 즉, 아내 올가 크네페르와 나눈 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체홉이 여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서 출간한 책 중 제3권에 그가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체홉 부부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처지에 거의 매일 편지를 쓰며 5년 동안 사랑을 나눴지만 결혼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그들이 서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이유는 체홉은 작가로서 작품을 집필해야 했고, 아내 올가는 배우로서 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Anton_Chekhov_and_Olga_Knipper,_1901
Anton_Chekhov_and_Olga_Knipper,_1901

편지는 1899년 여름부터 체홉이 숨을 거두는 1904년 봄까지 계속된다. 이 중 체홉이 쓴 편지와 전보는 433편에 달하며, 올가 역시 4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보면 올가가 체홉의 말년에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체홉의 죽음이 임박했을 무렵 올가는 삶이 무엇인지 그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체홉은 “삶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어봤었지? 그건 마치 당근이 뭐냐고 묻는 것과 같아. 당근이 당근일 뿐이듯, 삶도 삶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거지.”라고 대답했다. 체홉은 늘 이런 식으로 뭔가 중요한 내용이더라도 농담조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체홉이 이른바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인 19세기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작가이며, 그가 아내와 나눈 편지가 체홉을 비롯,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거라는 핑계로 깊어가는 가을밤에 그들이 나눈 애틋한 연애편지를 읽어볼까 한다.

Anton_Chekhov_1889
Anton_Chekhov_1889

그게 무슨 말이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소? 당신이 편지를 너무 오랫동안 안 써서 혼자서 온갖 추측을 하다가 당신이 나를 잊고 카프카스에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소. 정말 그곳에서 결혼을 한 것이라면, 상대가 누구란 말이요? ...(중략)... 당신이 허락한다면 당신의 손을 꼭 잡고 행운을 빌어주고 싶소. -1899년 6월 16일 체홉이

제가 당신이 쓰는 편지에 답장만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요즘 들어서 계속 편지 쓸 기분이 아니었어요. 마음을 추스른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주위에 있는 자연도 눈에 들어오고, 자연의 섭리도 조금 알 것 같더라구요. ...(중략)... 그런 후에 저는 신문과 편지를 가지러 아래로 내려갔고, 당신이 보낸 소식을 보자 뛸 듯이 기뻐서 큰 소리로 웃었지 뭐예요. 저야말로 작가 체홉씨가 여배우 크네페르를 까맣게 잊으셨나 보다고 생각했거든요. 편지 고마워요. 멜리호보에서 작업을 하시나 본데, 정말로 거기 아직 추워요? 그런데 저는 추운 5월이 지난 후에 그곳에서 따뜻한 남쪽 지방의 태양에 몸을 녹일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해요. -1899년 6월 22-23일 도시 므츠헤타에서 올가가

Chekhov_1893
Chekhov_1893

왜 안 오는 거죠, 안톤? 당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제가 편지를 안 쓰는 이유는 당신을 기다리기 때문이고, 당신을 무척 보고 싶기 때문이예요. 뭐가 문제죠? 망설이는 이유가 뭐죠? 나는 이제 무슨 생각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걱정만 앞서는군요. -1900년 9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올가가

사랑하는 올랴, 나의 사랑스러운 배우, 뭐가 그렇게 불만이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소? 나를 용서해요, 내 사랑, 화내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오. 내가 지금까지 모스크바에 갈 채비를 하지 못한 이유는 몸이 안 좋기 때문이라오. 정말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오. 나를 믿어줬으면 하오. 정말이라오! 못 믿겠소? -1900년 9월 27일 얄타에서 체홉이

나는 여배우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당신과 결혼했을 때 당신은 겨울에는 늘 모스크바에서 생활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하지만 나는 100만분의 1만큼도 서운하지 않으니 이 일로 인해 너무 자책하거나 속상해하지는 않았으면 하오. -1903년 1월 20일 체홉이

Tolstoy_and_chekhov 1900
Tolstoy_and_chekhov 1900

“행복한 사람은 지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행복을 소유할 수 없으며, 다만 추구할 뿐이다.”(체홉의 희곡 '세 자매' 중)라는 명언을 남긴 체홉, 정말 그가 말한 것처럼 행복은 잡히지 않는 것일까? 사랑은 무엇이며, 행복은 무엇일까?

 

글 | 승주연

성 페테르스부르크 국립대 러시아어 석사, 뿌쉬낀하우스 강사, 한러 번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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