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mila Berlinskaïa

Ludmila Berlinskaïa © Ira Polyarnaya
Ludmila Berlinskaïa © Ira Polyarnaya

 

[아츠앤컬쳐] 어느덧 그녀의 콘서트를 본지도 몇 차례 되었기에 익숙하다. 절제된 광기와 넘치는 에너지는 류드밀라의 나이를 의심하게 한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1960년에 태어나 러시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더불어 그녀의 부친인 발렌틴 베를린스키(Valentin Berlinsky)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로 보로딘(Quatuor Borodine)의 현악4중주단의 창설자였다. 한편 2011년부터 프랑스 피아니스트 남편인 아르투르 앙셀과 두오 공연으로 러시아와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 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지난 발자취를 살펴보면, 변호사인 어머니와 음악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내내 부모님과 친분이 있었던 많은 러시아 예술가와 지성인(작곡가: 미치슬라프 와인버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알프레드 슈니트케, 소피아 구바이듈리나; 연주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다니일 샤프란, 야코프 자크, 알렉산더 골든와이저, 야코프 플리에르. 오케스트라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겐나디 로즈데스트벤스키, 드미트리 키타엔코. 화가: 아나톨리 즈베레프, 니콜라이 실리스, 바딤 시두르, 블라디미르 렘포르트, 루스탐 함다모프, 드미트리 크라스노페브체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학술원 회원: 안드레이 사하로프)과 교류하며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게 된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년 뒤에 그네신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안나 칸토르 반에 들어갔다. 안나 칸토르는 예브게니 키신과 니콜라이 데미덴코를 가르쳤던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17세 때,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미하일 보스크레센스키를 사사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아버지와 함께 14세부터 보로딘 현악4중주단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된다. 15세 때 오케스트라 무대에 데뷔했으며, 알렉산더 루딘이나 알렉산더 크니아제프와 같은 재능있고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발트해에서 캄차카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시베리아까지 구소련 전역을 누비며 독주 또는 실내악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17세 때부터 유리 바쉬멧과 빅토로 트레티아코프와 같은 유명 음악가들과 협연을 했으며, 19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니즈니 노브고로드를 비롯한 문화 중심지에서 명실공히 러시아 최고의 홀 무대를 오르는 연주자 반열에 올랐다.

15세 때 류드밀라 베를린스카야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산하에 들어갔다. 위대한 예술가의 선택과 비호를 받게 된 그녀는 그를 영적인 아버지로 여겼으며, 그가 지닌 창조적 기질을 전수받았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 초까지 그녀는 스승의 정식 페이지 터너로서 조금 특이한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리히터가 세계 최고의 근현대 미술 컬렉션으로 명성이 높은 푸시킨 미술관에 창시한 《12월의 밤》 페스티벌에 특히많이 참여했다. 더불어, 2001년에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페스티벌인 ‘파리 봄 뮤지컬’을 창시했다. 파리에 있는 여러 홀에서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여러 작품 중에서 중요한 작품을 들자면, 파리풍으로 재해석된 알렉산더 스크랴빈의 프로메테우스와 조지 발란신 이후 처음으로 파리에서 무용과 함께 공연한 풀랑크의 ‘오바드’이다. 그리고, 루아르 지방에 셰르에서 거행되는 새로운 음악 페스티벌인 ‘라 클레 데 포르트(문의 열쇠)’에서 공동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한편, 류드밀라 베를린스카야는 콘서트 활동과 병행하여 2006년부터 알프레드 코르토가 창설한 명문 음악학교인 파리 에꼴 노르말 드 뮤직(Ecole normale de Musique de Paris)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곳은 일본과 한국인 학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통신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inesleear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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