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o Drift,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 c) Pace Gallery
Studio Drift,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 c) Pace Gallery

[아츠앤컬쳐] 회색의 도시 뉴욕. JFK 거주자가 아닌 방문객이 되어 엘로우 캡에 몸을 실었다. 설렌다. 911이후 섬뜩할 정도로 푹 꺼져버린 뉴욕 다운타운의 시티스케이프. 2014년 말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원월드트레이드센터가 완공이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뉴욕 다운타운은 물론이고 미드타운의 시티스케이프가 변해가고 있다. 아찔할 정도로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구름을 뚫고 계속 올라간다. 상상해본다. 80층 아파트 거실 큰창에 넓게 펼쳐져 보이는 도시. 구름 위에서 신선이 된듯한 느낌일까? 스파이더맨이 되어 뉴욕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일까? 도시는 하늘을 향해 더 높이 오르고픈 인간의 욕망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뉴욕미술시장의 삼월은 일년 중 가장 화려하다. 뉴욕에서 열리는 최대규모의 아트 페어인 아모리쇼가 열리는 기간에 다양한 아트페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세계에서 미술전문가들이 모여든다. 이를 위해 갤러리들은 한해 중 최고의 전시를 기획한다. 이미 미술시장도 노마드화 되어서자신의 갤러리로 고객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세계를 다니며 보따리 장사를 한다. 새로운 고객을 만나서 갤러리와 전속작가를 홍보하고 네트워크를 쌓아간다.

Yayoi Kusama,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Photograph by Shinjeung Jang
Yayoi Kusama,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Photograph by Shinjeung Jang

1913년 뉴욕에서 서유럽의 근대 미술을 소개하는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전시인 아모리쇼가 열린다. 파리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아방가르드 미술의 진원지이자 혼란과 격동, 새로움과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을 화려하게 피워낸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아모리쇼는 서유럽이 세계대전 여파로 침체기에 들면서 문명의 중심축이 새로이 부상하던 부와 권력의 강대국 미국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전시가 제67기병대 무기고(69th Regiment Armory)에서 열리게 되면서 전시회의 명칭이 ‘아모리쇼(Armory Show)’가 되었다. 무기고에서의 기념비적인 전시라 하니 흥미롭다. 전쟁 때 군수산업으로 부를 더욱 축적한 미국이 아니던가?

여느 때와 같이 맨하탄 55가 허드슨 강가에 자리한 피어92, 94에서 아모리쇼가 열렸다. 뉴욕의 봄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오늘은 영상 17도의 따사로운 봄날이다가 다음날은 영하의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온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며 둥둥 싸입은 외투와 스웨터를 벗고는 왠지 올해는 좀 더 안정되고 세련되어진 느낌이다. 보통 전시를 빨리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에만 시간을 쓰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틈틈이 다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작품의 테크닉적인 부분까지 세밀하게 보게 된다. 전시기획자라기보다 그저 즐기기 위해 탐닉하기 위해 간 구경꾼처럼 느릿느릿. 새로운 소재들과 새로운 방식의 구성들이 보인다. 재미있다. 가볍다. 재치있다. 화려하다. 난해하다. 무겁다. 절제미가 있고 상품으로의 세련미를 추구한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구하는 예술. 30개국에서 온 210개의 국제적 명성을 보유한 갤러리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Yayoi Kusama,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Photograph by Shinjeung Jang
Yayoi Kusama,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Photograph by Shinjeung Jang

487 x 244 x 244cm 크기의 콘크리트 큐브가 작은 전시공간 안에서 둥둥 떠다닌다. 아, 이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시끌벅적한 시장통에서 몰려든 구경꾼들. 사뭇 당황하여 멈칫멈칫 어디론가 이 작은 공간에서 탈출할 만한 틈새를 물색하는 듯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몰려든 구경꾼들은 참으로 무거워 보이는 공중부양상태의 회색덩이를 탐색한다.

낚시줄 하나 안 보인다. 정말 혼자 떠 다닌다. 이 거대한 아이는 어느 누구의 컨트롤도 받지 않고 있다. 스스로 사고하고 컨트롤한다. 예술이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페이스 갤러리에서 65,000명의 아모리쇼 관람객들을 충격에 빠트리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기술을 중심에 둔 “Future/Pace” 프로젝트. 영화 속에서 본듯한 가상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을 현실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Studio Drift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통해 우리가 이상적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를 표현하고 또 관객들로 하여금 잠시 멈추어서 일상 속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는 테크놀로지에 관해 사고해보기를 권유한다.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Photograph by Teddy Wolff
The Armory Show Installation view,Photograph by Teddy Wolff

익숙한 빨간 땡땡이 야요이 쿠사마의 잔디밭을 만났다. 꽤나 넓은 공간의 초록색 인조잔디 위 11개의 크고 작은 높고 낮은 버섯 또는 단순한 유기체 모양같이 생긴 빨간색 바탕에 흰 땡땡이 조각이 설치되어있고, 잔디밭 코너에는 벤치가 있다. 쉬어가야겠다. 옆에 앉아있던 두 여자관람객과 수다가 시작되었다. 역시 인간은 정보 교환을 위해 교류하지 않았던가? 요즘은 스프링/브레이크 아트페어가 핫하다. 그녀들도 가보려 한다면서 궁금해했다. 작년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아 지나쳐버린 스프링/브레이크 아트페어가 아쉽기도 하고 이슈가 되고 있어 궁금하기도 하여 일찍이 다녀왔던 터라 신나게 전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프링/브레이크 아트페어, 4 타임스퀘어 사뭇 생소했다. 생뚱맞게도 블링블링 관광지인 타임스퀘어 높디높은 건물에 아트페어라니. 2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스르르 웃음이 피어오른다. 신선하다. 갤러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아트페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해마다 주제가 주어지고 큐레이터는 신진/중견작가들의 작품으로 전시를 기획한다. 예술인들에게 저렴한 전시공간과 관객들에게 저렴한 티켓을 제공한다. 올해 BLACK MIRROR를 주제로 6회째를 맞이하는 스프링/브레이크 아트페어가 이름만큼이나 생기발랄하다. 봄날 봇물 터지듯 무에 그리 할 말들이 많은지 아우성치는 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150여 명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400여 명의 작가 작품을 만났다. 작품은 온라인에서 판매된다는데 과연 이런 작품들이 판매가 될까 싶다가도 요것저것 복도에 주방에 화장실에 현관 앞에 걸어 놓으면 재미나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이발소에서 관객의 머리를 깎아준다. 판매에는 영 관심이 없는 듯한,  그야말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보여주고 담소를 나누고싶은 듯한 설치전시들도 만날 수 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이아트. 투자와 상업적 목적으로 움직이는 미술시장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은 다양한 작품들이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 듯하여 가볍고 즐거웠다. 아트가 숭고한 영원한 그 무엇만이 아닌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듯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글 | 장신정
문화예술기획자, New York University 예술경영 석사, 전MoMA PS1 Contemporary Arts Center전시설치팀장, 전 아시아문화전당 전시팀장, 기획전 큐레이팅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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