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식, 왕실 푸레도기
배연식, 왕실 푸레도기

 

[아츠앤컬쳐] 요즘 들어 구서울역이 문화역서울 284라는 명칭하에 문화예술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3월 여가의 기술이라는 전시에 참여한 김승영 작가를 만나러 갔었는데 문화역서울 284 전시공간에 매료당했었다. 당시, 힐링에 관해서 기획을 구상하던 차에 만난 전시공간이라 며칠이고 그 공간에서 전시를 구상하며 전율을 느꼈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유럽풍이었다. 내부는 예전 서울역으로 사용되던 모습 그대로를 복원해서 전시공간으로 꾸몄고 문화재청 재산이라서 벽에 직접 못을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금물이었다.

3등 대기실, 1・2등 대기실이 있고, 귀빈실, 귀빈예비실은 아주 화려하다. 2층에는 그릴로 사용되던 크고 화려한 공간이 있다. 현재 한국 공예 디자인 문화 진흥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공간이 매력적이라서 너무 좋다고 전시를 올렸다가 참패를 겪은 기획전이 한두 개가 아니란다. 공간 자체가 개성이 강하다 보면 그에 조화롭게 들어가는 콘텐츠가 살아나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

문화역서울 284에서 6월 25일 오픈한 공예플랫폼이라는 지역 공예 유통 활성화를 위한 전시를 큐레이팅하였다. 공예전시는 지난해 겨울 공예트렌드페어 이후에 두 번째이다. 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진 터라 흔쾌히 함께했다. 이번 전시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예술 총감독님, 두 명의 큐레이터가 형성되었다.

전시규모가 있고 일정이 긴박한지라 회의를 하면 12시간 그 이상씩 끝장토론을 한다. 전시콘셉트가 잡히고 두 큐레이터가 콘텐츠를 구성한다. 긴박하다. 정말 다이내믹 코리아다. 이런 전시는 적어도 1~2년 정도 구상하고 올려야 하는 것을…. 숨가쁜 대로 주어진 조건 내에서 맹렬히 달려본다.

요즘은 전국을 누비며 작가 선생님들을 뵙는다. 아쉬운 점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좀 여유 있게 대화도 나누고 하련만 지방에 가면 하루에 다섯 분에서 일곱 분을 만나고 다니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이동시간이 적게는 20분에서 대부분 1~3시간. 어시스턴트에게도 미안한 맘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아직은 작품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고 그렇게 진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문명인 컴퓨터로 이미지 보고 진행을 시도해보았으나 역시 아직은 그것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다니면서 많이 배운다. 그들의 삶의 모습들은 형형색색이다. 오늘은 작업실 방문 스케줄이 세 군데 잡혀있었다.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휴게소에서 얼른 김치찌개를 먹고는 경기도 화성시로 이동. 동네에 들어오니 해물굴솥밥이 유명하다. 아쉬움을 달래며 배연식 작가 작업장에 도착했다. 근사했다. 좁은 시골길을 살짝 타고 들어가는 듯하더니 근사한 주택이 몇 덩어리 나왔다. 인사를 드리고 이 층 전시공간으로 들어오니 작품이 참 좋았다.

훌륭했다. 왕실 푸레도기.
배연식 작가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옹기장 배요섭 작가의 자제이다. 그 따님에 이르기까지 3대째 대를 이어 옛 왕실 푸레도기 기법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푸레도기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유약이나 잿물을 바르지 않고 흙과 불, 천일염의 조화로만 만들어진 도기이다. 도자기나 일반 옹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기능을 가진 우리 고유의 도기로 방부, 통기, 저장성이 그 특징이다.

푸레도기는 장작 가마에서 5일간 장작 나무가 타면서 만들어진 나무 재가 바람을 타고 기물에 날아가 소복이 쌓이면, 5일째 되는 날 천일염을 뿌려서 천일염이 나무 재를 녹이고 천연 막을 형성하는 원리인데 자연의 재료로 코팅 효과를 볼 수 있다. 숯가루와 천일염이 붙어서 형성된 코팅은 방부성을 높여주어 변질하지 않고 신선하게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또한, 푸레도기는 정화 효과가 있어 수돗물을 담아 놓으면 얼마 지나 생수가 된다고 한다.

배연식 작가는 과거 선조들의 지혜와 기능성을 추구하는 옛 방식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현대 주거 생활에 맞게 재해석하여 더 좋은 기능과 웰빙을 추구한다. 작품은 미적으로도 아름다우니 우리의 식문화, 주방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글 | 장신정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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