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사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아츠앤컬쳐]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처음 지을 때 직접 벽돌을 찍고 나무를 베고 잡일을 혼자서 도맡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슈바이처는 한참 나무를 다듬고 있는데, 옆에서 청년 한 명이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슈바이처가 “거기 서 있지만 말고 같이 일합시다.”라고 하자 그 청년은 대답했다.

“전 공부를 한 사람이라 그런 노동은 안 합니다.”

슈바이처는 그 청년의 말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나도 학생 때는 그런 말을 했소만, 공부를 많이 한 후엔 아무 일이나 한다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사람 관계에 상하가 없다는 말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혹시 내 학력이 얼만데, 내 나이가 얼만데, 내 배경이 어떤데, 내 처지가 어떤데…… 하며 내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일에 뛰어들기를 꺼리는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신화에서는 신들 중에 장난꾸러기 신이 등장한다. 그는 분명 인간이 아닌 신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다른 신들처럼 위엄을 떨지 않았다. 자기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즐겁게 했다. 그 일이라고 해봐야 인간들이 하는 목동 일이었지만 그는 맡은 일을 신이 나서 했다. 그러니 그는 그 어떤 신보다 행복한 신이었다.

판은 허리에서 위쪽은 사람의 모습이고, 염소의 다리를 가졌다. 그리고 뿔이 났는데 아주 작았고, 귀는 커다랗고, 웃을 때 입은 아래로 뾰족해졌다. 판은 신의 세계에서 외톨이었고 아웃사이더였다. 사람들은 신을 두려워하고 숭앙했지만 판은 별로 존경하지 않았다. 신들은 판을 비웃었다. 판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헤르메스가 그의 아버지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엉뚱한 그를 이해할 신은 헤르메스뿐이었다. 누군가는 목동과 암염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했다.

판은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명랑한 성격인데, 한편으로는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 악몽을 불어넣곤 했다. 게다가 아무 이유 없이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기도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소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면 농부는 ‘판의 시간’이 왔다고 여겼다. 그렇게 판이 갑자기 비명을 질러서 공포를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 ‘당황’과 ‘공황’을 의미하는 ‘패닉(panic)’이다.

판은 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켰는데, 연애에 잘 빠졌다. 그런데 판의 사랑을 받으면 누구나 도망치기 바빴다. 판의 사랑을 받은 에코 역시 몸을 숨겨 메아리로 변해버렸다. 그런 어느 날 판은 시링크스 요정이 강에서 노는 것을 보고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 놀란 시링크스가 달아났다. 판이 그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그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시링크스는 위기의 순간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도와주세요! 저를 도와주시면 평생 떠받들겠어요!”

그때 시냇물이 그녀를 도와주었다. 판이 시링크스를 움켜쥐는 순간, 시냇물은 그녀를 갈대로 변신시켰다. 판의 손에는 갈대만이 한 움큼 쥐어지고 말았다. 판은 아쉬운 마음에 시링크스가 변신한 갈대를 잘라 차곡차곡 묶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악기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팬플루트이다. 팬플루트는 ‘판의 플루트’라는 뜻을 지녔다. 판이 팬플루트 연주를 하면 그 소리가 무척 아름다웠다.

판은 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불사신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인간과 같이 유한한 목숨이 주어졌다. 판이 죽었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를 존경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익살스러움과 장난기 어린 명랑함을 사랑했던 것이다.

산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못생긴 나무가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큰 고목나무가 된다고 했다. 신들의 세상에서는 판이 가장 못난 신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신들보다 그를 사랑했다. 다른 신들은 두려워했지만 그를 친근하게 여겨 친구처럼 좋아했다.

신의 세상에서 신들은 불사의 몸이었지만 판은 죽음이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러나 유한한 죽음을 그는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목숨이 유한한 것이야말로 인간의 특권이었다.

단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하는 예는 참 많다. 마키아벨리 역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즐기기 전에 먼저 노력하는 법을 배웠다.” 마키아벨리는 그렇게 가난했기 때문에 노력하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서 일인자가 될 수 있었다.

약점을 오히려 인생의 강점으로 만든 예는 그 밖에도 참 많다. 고졸의 학력으로 우리의 최고 유망감독이 된 류승완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중요한 건 누가 대학을 나왔느냐, 누가 어디로 유학을 다녀왔느냐가 아닙니다. 누가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가, 누가 항상 깨어있는가, 누가 항상 배울 자세인가, 누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는가, 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건도 외모도 배경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즐겁게 삶을 누리는가’, ‘누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가’이다.

글 | 송정림 방송작가·소설가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1,2,3>,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감동의 습관>, <명작에게 길을 묻다>,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성장비타민>, <마음풍경> 등의 책을 썼고 <미쓰 아줌마>,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성장느낌 18세> 등의 드라마와 <출
발 FM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 등의 방송을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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