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 Arad, Bibliotheque Restless © Artcurial
Ron Arad, Bibliotheque Restless © Artcurial

[아츠앤컬쳐] 파리의 경매시장은 오랜 역사와 세분화된 시장 구조로 유럽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을 지키고 있다. 시장의 구조를 요약하자면 드루오(Drouot)를 비롯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경매사와 영미권 경매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전통에 영미권 경영전략을 적절히 절충한 국제적인 프랑스 경매사인 아트큐리얼(Artcurial)이 있다. 아트큐리얼 경매사는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몇 년 전 국내 드라마인 <파리의 연인>에서 남자주인공 박신양의 저택으로 둔갑한 바 있다. 바로 그곳에서 지난 10월 27일 이 시대 스타 디자이너 <론 아라드의 걸작전(Ron Arad: Masterworks)> 경매가 긴장감 있게 진행되었고 결론은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Ron Arad, London Papardelle © Artcurial
Ron Arad, London Papardelle © Artcurial

역대 세계 최고가로 낙찰
이날 경매에는 론 아라드의 대표적인 걸작 가구들이 출품되었다. 1981년부터 2007년까지 그의 디자인의 변천사를 한눈에 실감할 수 있는 굵직굵직한 가구로 엄선된 지라 경매 몇 주 전부터 컬렉터들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는 “아트큐리얼 디자인팀의 이번 경매를 위한 리서치 성과는 탁월하다. 필자는 그들의 선택에 경이로울 뿐이다.”라며 높이 평가했다.

옥셔너가 망치를 두드리자 긴장감 속에서 경매가 시작되었다. 시작 후 16분째 바로 론 아라드의 전설적인 책꽂이인 ‘레스틀리스(Restless)’가 낙찰되는 순간이었다. 아라드의 2007년산 책꽂이가 론 아라드 가구 중 역대 세계 최고가인 373,800유로(미화 494,623달러)로 낙찰되었다. 이는 추정가인 150,000유로에서 250,000유로를 훌쩍 넘은 놀라운 성과였다. 그리고 주최측에서는 아시아 컬렉터가 이 책꽂이의 새 주인이라고 밝혔다. 여섯 개의 에디션으로 제작된 이 책꽂이는 얼핏 보아서는 책꽂이 같지 않다. 지나치게 유려한 곡선미가 불안해서 과연 책을 꽂아 놓으면 미끄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이날 경매에는 총 20점의 론 아라드 가구가 경매 시작 35분 만에 총 판매가 1,727,970 유로(미화 2,286,501달러)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모두 낙찰되었다. 추정가의 두 배도 훨씬 넘는 쾌거라며 아트큐리얼의 디자인팀은 대만족을 표했다. 한편, 상당수의 가구는 워싱턴에 소재한 워터게이트 호텔(Watergate Hotel)에서 구입하였다.

아트큐리얼 디자인팀은 지난 5월 장 푸르베(Jean Prouvé) 경매 세계 최고가 경신에 이어 론 아라드 세계 최고가로 낙찰되었으니 신바람이다. 디자인팀의 책임자인 엠마뉴엘 베라르(Emmanuel Berard)는 파리의 최대규모 아트페어인 피악(FIAC)이 10월에 열려 이에 맞춰 전략적으로 경매시기를 정했다면서 컬렉터의 이동에 민감한 미술시장의 생리에 민첩히 대처하고 있음을 밝혔다.

Ron Arad, Rover Chair © Artcurial
Ron Arad, Rover Chair © Artcurial

금속 시리즈로 소재의 혁신 이루다
엉뚱하기로 소문난 론 아라드는 폐차할 자동차 좌석을 떼어내어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1981년 폐차에서 나온 자제로 만든 ‘로버 의자’라는 데뷔작이다. 그리고 1986년에 금속을 유연하게 구부려서 만든 ‘웰 템퍼드(Well Tempered) 의자’ 등 다양한 금속 가구를 발표하면서 일약 금속 시리즈 스타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었다.

이날 경매에서 두 번째로 고가에 낙찰된 가구는 2006년에 제작된 ‘MT Rocker’라는 소파이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이 소파는 마치 거울처럼 번쩍번쩍 빛난다. 세 번째는 런던 파파델(London Papardelle)이라는 소파이다. 무광의 브론즈 소재로 1992년 작이다. 이어서 1989년에 제작된 세 개의 다리와 하나의 테이블(3 legs and a table)이라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테이블이 187,800유로(248,502달러)로 낙찰되었다. 그리고 서양란이라는 의미인 오키드(The Orchid)의자가 175,400유로(232,094달러)로 워터게이트 호텔에게 낙찰되었다. 오키드 체어는 항공기에 사용하는 알루미늄 재질로 일부가 붉게 처리되었다. 금속성 소재와 식물의 디자인의 절묘한 조화가 차가운 듯 아름답다.

Ron Arad, MT Rocker © Artcurial
Ron Arad, MT Rocker © Artcurial

이스라엘의 철학과 영국문화 영향
론 아라드는 1951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조각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를 통해 어려서부터 항상 예술과 문화를 접하며 자랐다. 무명의 예술가였던 그는 1974년에 무작정 영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21세였던 그가 영국에 온 이유는 바로 사실주의적 영국 영화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건축 명문인 AA스쿨에서 수학 후 건축업계에서 일을 하였다.

그는 1970년대 공상과학 소설을 방불케 하는 건축학계의 무궁무진한 창의적 분위기를 통해 오늘날 그의 디자인 언어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정작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바로 가구 디자인이다. 이후 1997년부터 영국 왕립학교(RCA) 제품디자인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2002년에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RDI(Royal Designer for Industry)칭호를 받았다.

현재 그의 스튜디오는 영국 런던의 북쪽에 위치한 초크 팜 로드 62번지에 위치해 있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모국인 이스라엘의 유머와 철학이 담겨 있다. 그리고 오랜 영국생활 속에서 경험한 영국적인 색채도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이라면, 공간과 인체가 만나는 지점을 디자인하는 것이 가구 디자인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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