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우리나라 1776년, 조선 22대 왕 ‘정조’는 제위식에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화들짝 정치 독립선언을 했고 같은 해 지구 반대편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미국이라는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영국에 반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필라델피아가 어떤 도시지? 할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한 도시는 아니지만 영화 ‘필라델피아’를 통해 전 세계에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유명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필라델피아’는 당시 메이저급 영화 중 첫 번째로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라는 껄끄러운 주제를 다루며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영화를 제작했는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했던가? 2천6백만 달러를 투자해 2억 달러를 넘는 투자 대비 10배가량의 Box office 판매고를 올렸다. 게다가 주연배우 톰 행크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제목과 배경으로 대도시 뉴욕이나 수도 워싱턴, 아니면 게이들의 천국인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필라델피아였는가는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미국 독립 선언문의 2장 내용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중략)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와 같이 미국인의 깊은 의식 속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터부시 되던 주제에 대한 거부감은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신의 한 수였을 것이다.
이 영화 중 오디오에서 구슬픈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나오고 톰 행크스가 눈을 감고 설명하던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흘러나오던 오페라 아리아는 대서양 건너 ‘프랑스 혁명’ 시대 실존 시인 ‘안드레아 쉐니에’를 제목으로 작곡가 조르다노가 만든 오페라 중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라는 내용의 곡이다.
오페라 스토리를 살펴보면 1막 시작에 제라드라(바리톤)라는 하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귀족의 하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노래한다. 그가 프랑스 혁명 중에 중요 요직을 차지하는데 사랑하는 여인 막달레나(소프라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멘토이던 시인 안드레아 쉐니에(테너)를 조국의 적으로 몰아버린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제라드(바리톤)는 안드레아 쉐니에를 변호하지만 그 노력은 허사가 되고 남녀 주인공 모두 단두대로 끌려가며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오페라의 배경인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프랑스 인권 선언이 만들어지는데 제1조는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 결국, 어디나 평등과 권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미국 독립 전쟁의 배경은 영국과 프랑스의 악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유럽에서 프랑스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호시탐탐 복수를 다짐하는데 때마침 미국의 독립 전쟁을 통해 영국에게 치명타를 줄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미국 편에 서서 아낌없이 군수 물자를 지원해 미국의 독립을 도왔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프랑스 내부의 재정 파탄과 국민의 배고픔은 제대로 돌보지 못해 결국 몇 년 지나지 않아 프랑스 부르봉 왕조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을 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 여파로 전 유럽은 시민혁명과 인권선언이 대륙을 휩쓸었다.
‘나비효과’라는 영화처럼 미국 필라델피아 나비의 날갯짓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 대륙에 태풍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1996년 개봉된 영화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만들어져 어떤 의미로든 전 세계인들에게 평등과 인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폭풍보다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문화의 영향력은 근래에 더욱 메가파워급이 되었다. 새로운 생각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그 영향력은 시작한 지점에서 보아도 상상 이상의 크기를 가지게 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만 보더라도 세상을 한 바퀴 돌고 태풍이 되어버렸지 않는가? 세상이 인터넷으로 좁아진 만큼 우리 문화의 가능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5,000만이 쓰다 버릴 것만 만들지 말고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를 대성공으로 이끌어 준 아이폰의 시작은 음원을 사고파는 인터넷이 되는 아이팟이라는 MP3 기계에서 시작했는데 그 MP3라는 기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기계였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났더니 우리가 만든 MP3가 더 이상 아니었다.
오페라가 시작된 피렌체를 시작으로 세계를 한 바퀴 돌아버린 오페라는 우리가 카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새롭게 구성해 만들어내면 우리의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필라델피아’처럼 영화에도 써보고 광고에도 써보고 또 다른 형태와 스토리로 재구성도 해보는 노력을 통해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몇몇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MET OPERA 시리즈는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것이 아니라 미국 뉴욕에서 날아온 콘텐츠다.
우리도 이제 세계화를 위해 뭔가 ‘대한민국 문화 혁명 선언’ 같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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