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남산을 드라이브하다 보면 ‘괴테 인스티튜트’라는 이름의 독일문화원이 있다. 자국의 공인된 문화원의 명칭을 사람의 이름으로 장식하다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그럴까? 항상 궁금했었다. 외국에 가면 거리에 상징적인 이름들이 많이 붙는 건 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이름을 붙인 데에는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일단 일반적인 우리의 무조건 반사에 따라 괴테라고 스마트폰에 찍어보면……. 일반적인 사람의 눈에 비친 그의 삶은 매우 심심하기까지 하다. 집안 좋고 맘 편하게 살던 그런 도련님은 사실 우리 같은 사람이 보면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는 평점 별 2개 반짜리 미개봉 영화 같은 느낌의 인물이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정치가로서 활동하며 좋은 경력을 쌓아갔고 바쁜 와중에도 고급 취미생활을 통해 자기 계발도 잘해갔다.
그런데 그의 인생이 360도 바뀌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그는 1786년 37세의 나이에 갑자기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새벽에 도망치듯이 이탈리아로 향했다. 일이 정말 많아서 야근하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하고 야반도주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야반도주의 출발 장소는 체코의 카를 황제는 물론이고 베토벤 같은 유명인들이 치료의목적으로 자주 찾았다는 체코의 아름다운 온천 ‘카를로비 바리(칼스바트)’였다. 그것도 친구의 생일파티 중에, 이건 뭐 한두 달도 아니고 1786년~1789년까지 3년(20개월)에 걸쳐 여행을 했는데 자신도 여행이 길어질 줄 몰랐는지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그냥 떠나갔다.
베네치아부터 시칠리아까지 한마디로 이탈리아 끝에서 끝까지 가봤다. 모든 걸 수첩에 적고 계획하는 괴테의 꼼꼼한 성격에 비춰볼 때 이 상황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슨 일이었을까? 완전 정신이 나가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대형 사고를 칠 수 있었을까?
사람이 도망치는 이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문제거나 빚쟁이를 피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괴테는 여자친구들은 많았지만 책임져야 할 부인도 없는 솔로 신분이어서 불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고 집안이 워낙 부유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성공하고 현재 자신도 정계에 진출했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는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괴테의 평소 성격은 고전주의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유부녀들을 그렇게 사랑했었다. 유유상종이라고 그의 친구 한 명은 유부녀를 사랑하다 권총자살까지 했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는데 이게 대박이 난 거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당시 프랑스 대혁명(1789년)의 원천이 된 계몽주의 사상(이성적 사상)이 대단했는데 그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낭만주의 질풍노도 문학이 시작될 무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한방으로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답답한 공무원 생활이 맞지 않았을 듯하다. 그것도 ‘카를로비 바리’라는 아름다운 휴양도시에서 파티가 끝나고 바라본 하늘의 밝은 달은 괴테를 미치게 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달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썼으니 아무리 그래도 달 보고 우는 사나이가 있다니…. 그 정도로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괴로움에 무작정 떠났고 괴테에게 있어서 이 시기가 그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게 된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괴테는 독일의 대표적 지성이 되었다. ‘이탈리아 기행’을 비롯해 ‘빌헬름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특히 오랜 세월에 걸쳐 ‘파우스트’라는 엄청난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 이야기는 독일에서 구전되던 오래된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괴테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영혼 구원을 주제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사랑의 위대함을 SF처럼 써내려 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샤를 구노’라는 프랑스의 작곡가에 의해 1부와 2부가 교묘하게 합쳐져 오페라화되었다(1859년 파리 리리크 극장 초연). 돈과 지위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젊은 시절을 다 떠나보낸 늙은 박사의 소원은 단 한 가지, 사랑하는 여인과 죽도록 놀아보고 싶은 것이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혹시 괴테는 37살에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구상하다, 뻔할 것 같던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타임머신의 주인공처럼 모든 걸 두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처음으로 세상에 나가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굉장한 존재로 생각하고 많은 재능을 습득하려고 하며 무엇이든지 다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의 형성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보다 큰 집단에 들어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을 익히며 의무에 따라 활동하는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망각할 줄 아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때 비로소 그는 자신을 알게 되지요.” - 야르노(괴테의 ‘빌헬름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중)
신금호
CTS 라디오 ‘펀펀뮤직’ 진행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