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마치 왕년에 전성기를 자랑하던 영주가 성을 쌓고 호화 찬란하게 꾸며놓았다가 임종에 이르러 사랑하는 자기 아들에게 안심하고 물려주었는데, 망령이 되어서 그 성터에 다시 돌아와 다 타버리고 폐허가 되어버린 성을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불 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사랑의 결과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그런 작품들은 아직도 여러 형태로 무대에 계속 올려지며 대리만족감을 주고 있다. 이런 주제의 작품들은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는데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비제의 ‘카르멘’,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등 여인을 맹목적으로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들이 인기몰이의 비결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오페라들의 마지막은 어김없이 여인들의 죽음으로 관객에게 큰 감동을 준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마저도 죽여버림으로 여주인공의 죽음과 더불어 오페라의 드라마틱한 피날레를 장식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보통인데 권총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독자나 관객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작품이 있다. 소설을 읽은 사람들 중 충격이나 대리만족을 넘어 감정이입이 너무 심해서 소설의 주인공을 따라 모방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이 시발점은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의 출세작이며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유럽문학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송받았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 초판)’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소설이었다. 지금이야 작품 속에 이런 모습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말이 많았다.
이런 모방자살의 현상에 대해 작가 ‘프리드리히 니콜라이’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풍자소설로 이런 현상을 비꼬고 나서며 괴테와 각을 세웠을 정도로 자살문제는 당시 전 유럽지역의 사회적 이슈였다. 특히 괴테 당시에도 학원자살이 특히 많았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의 자살이 많았던 기록이 있다.
눈을 돌려 우리 대한민국을 보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벌써 2004년경부터 쉬지 않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니 정말 암울한 통계 수치가 아닌가? 1년에 10만 명 이상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고 병들어 죽을 확률이 적은 10세~30세 인구 중 사망원인 1위란다. 그러고 보니 성적비관 자살 사건을 다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1989년에 영화로 나왔으니까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 오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연예인들의 자살이 늘면서 모방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급증해 사회적인 관심이 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에 와서 베르테르 정도의 스토리는 이제 그렇게 쇼킹한 이야기로 여겨지지 않지만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상사병에 걸린 짝사랑의 심리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 정도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베르테르의 모습을 열거해 보자면, 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가 오페라로 만들었으며 요즘은 뮤지컬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자주 공연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마스네’의 오페라 음악이 훨씬 베르테르의 슬픔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반 관객들은 스토리 라인을 따라잡기 쉬운 한글가사 뮤지컬 공연을 선호하는 듯하다. 선택은 절대적으로 개인의 취향이다.
또한, 베르테르는 그 이름이나 공연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브랜드 가치가 매우 높은데, 베르테르가 죽어가면서까지 사랑한 여인의 이름이 ‘Charlotte(샤롯데)’이고 그 애칭이 ‘Lotte’이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아는 이름이다. 갑자기 배가 고픈데 오늘 백화점에 가서 햄버거 사 먹으면서 영화나 봐야겠다.
신금호
CTS 라디오 ‘펀펀뮤직’ 진행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