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가 있는 풍경, 162.2x130.3cm, acrylic oil silk screen sticker ona cnvas, 2014
피에로가 있는 풍경, 162.2x130.3cm, acrylic oil silk screen sticker ona cnvas, 2014

 

[아츠앤컬쳐] 차소림. 몇 년 전 처음 그녀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작품의 하늘도 파랬다. 작업실 벽에는 과거 금호미술관 전시 출품작들이 걸려있었다. 파아란 하늘 아래 드러난 누우런 빛이 아렸다. 아직 치유되지 않아 누렇게 곪은, 오래되어 화기가 사그라진, 더는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상처의 흔적들이 싱그러운 하늘빛 사이에 살포시 드러나 있었다. 분칠을 해놓았으니 아무도 모르리라. 나는 하늘빛이다. 나는 희다. 나는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굳이 말하는 듯하다. 나는 정말 아프다고 고통스럽다고 절규하는 듯하다. 그 내면의 소용돌이가, 꿈틀거림이, 상처가 버겁다. 번거롭다. 몰입한다. 그림 속에서 서성이며 두리번거리며 결과물을 산출해 나간다.

이쯤에서 소통의 문제라고 타협하고자 한다. 이쯤이면 꽤나 재미를 보고 있다. 재미나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나는, 보여지는 나는, 무대 위의 나는 꽤나 쓸만한 모범적인 연기자이다. 엘리트 학벌에 모범적인 가정. 어디에서도 나는 나의 역할을 썩 잘 수행해낸다. 훌륭하다.

하지만 즐겁지는 않다. 방황한다. 나를 찾아 나선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푸르른 하늘, 공간, 계단 그 가운데 거대한 흰 석고 문자 덩어리들이 가득 차 있었다. 흰 석고 문자 덩어리의 아랫면과 하늘 반대편에 위치한 땅을 상징하는듯한 공간은 노오란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답답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면서 해소를 하고 있는 것일까? 더 짓눌리고 쌓여가고 있지는 않을까?

나의 한 모습을 보는 듯하여 안쓰러웠다. 그녀는 그렇게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훌륭히 잘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복잡다단한 심리적 트라우마들을 단순화시키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자신을 만나려고 또는 회피하려고 절규한다. 그녀 속에 숨어있는 꿈틀거림, 에너지, 욕망. 이들은 절제되어지고 관념으로 포장되어져 고삐가 잡혀있는 듯하다 어느 순간 분출되어져 나온다. 그것이 모두 그림으로 배설되어지기를 소망해본다. 그녀가 그림에 미쳐버리기를 소망한다. 그녀에게 나의 욕망을 투여한다.

오랜만에 그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녀의 드로잉이 좋았다. 드로잉 속에서는 자유로운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년 전쯤인듯하다. 꽤나 늦은 밤, 그녀가 카톡으로 시원한 초록의 그림을 보내왔다. 드디어 터져 나왔다. 강렬한 초록의 분출이다. 기뻤다. 희열을 느꼈다. 대리만족감을 느꼈던 듯하다. 전율이 오는 듯 흥분하였었다. 그녀는 얼마나 시원했을까? 그림을 보고 또 봤다. 참 좋았다.

얼마 전 개인전에서 만난 신작은 그 깊이가 더 해져있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피에로는 이제 사뭇 안정적으로 보인다. 발코니 아래 차곡히 정리해 놓은 흰 석고 문자들 위에서, 오히려 흰 석고 문자들이 있어서 불안한 듯 튼실해 보이는 발코니 위에서 세상을 원경으로 관망한다. 초록의 일필휘지의 시원한 붓터치에는 힘이 실리고 오묘한 깊이와 공간감을 담은 산수화를 그려냈다. 사람들은 풍경 속을 노닌다.

주로 옆모습과 등 뒤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사뭇 여유로워 보이지만 나름의 지향점을 향해 긴 여행을 가고 있는 듯하다. 엉켜있는 실타래는 그녀의 작업에서 오래된 소재이다. 아주 오래전 작품에는 캔버스에 문자를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 따 내려갔었다. 그 작품을 만났을 때 그녀의 마음속 상처를, 얽혀있는 관계성에 대한 예민함과 아림을 느꼈었던 듯하다. 산수화…. 산 넘어 산 그 봉우리 언저리 어디쯤에서 무채색의 인물이 실타래를 던진다. 서양의 카우보이처럼. 십자가 다리 한편에 모여있는 사람들. 건너간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들. 거대한 문자 앞에서 잠시 멈추고 선 사람. 등장하는 이 모두가 차소림 자신인듯하고 세상 사람들인듯하다. 피에로는 여유로이 울타리가 있는 안전한 발코니에서 이들을 관망한다.

글 | 장신정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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