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원
원성원

 

[아츠앤컬쳐] 도곡의 김영모 제과점에서 호두파이를 사고는 달렸다. 마음이 급했다. 이미 5분 정도는 늦겠다. 급한 마음에 자꾸 길을 잘못 들어 허둥댄다. 오랜만에 라디오를 켰다. 흘러간 옛 음악이 나오는 곳으로 채널을 고정시키고 초조한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요즘 들어 종종 평정심을 잃곤 한다. 삶의 찌꺼기들이 내 속에 쌓여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양재천을 걷는다. 어설프게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생각한다. 생각들은 흩어져 버리고 눈에 보이는 도시풍경에 매료되어 다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가까이 보이는 아파트들과 길, 물, 다리, 한강, 멀리 보이는 집들. 그들을 분쇄하여 다시 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원성원 작가의 사진 작업이 떠올랐다.

3년 정도 전인듯하다. 홍콩 아트페어에서 원성원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다. 아주 짜임새가 좋고 매력적인 탄탄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사진 작업이었다. 그곳에서 잠시 작가와 인사를 하였는데 언젠가 만나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했었다. 얼마 전 화랑 미술제에 원성원 작가의 작품이 출품되어있었다. 새로운 시리즈들이 나와 있었다. 그녀의 작업실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장흥 아틀리에. 30분이나 늦었다. 여전히 급한 마음에 불쑥 먼저 요즘 기획하고 있는 힐링 전시 이야기를 꺼냈다. 원성원 작가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 인기가 있다. 갤러리에서 해외 아트페어에 나가고 이미 컬렉터 군이 형성되어있는 상태였다. 작가는 미술관 전시를 원했다. 상업적인 이미지를 벗고 싶어 했다.

드로잉들에 눈이 갔다. 이제서야 마음이 작품으로, 그 이야기 안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중앙대 조소과를 졸업하고는 독일로 유학을 갔다. 설치 조각 작업을 하였는데 자신의 작업 스케일과 그 양에 짓눌리었고 겉돌기 시작한다. 그를 인지한 교수님은 그녀를 퇴학시키기로 결정한다. 참으로 훌륭한 선생님이 아닌가? 독일의 교수님은 학생이 자신에게 맞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제시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달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은 8㎡의 작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사진기가 하나 있었다. 방은 너무도 작아서 무언가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으려면 심사숙고해야만 했다. 이미 있는 무엇을 비워야 새것을 들여놓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필수 불가결한 물건들만 소유하게 된다. 자신의 방에 있는 모든 것을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작업으로 독일의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친구들에게 받은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그 물건들에 관해 적어서 학교 복도에 설치하였다. 그 작업은 다른 교수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스스로 모든 프로세스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작업만 하리라 결심한다. 8㎡의 작은 방은 그녀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물해준다.

Dreamroom. 너무도 추운 날씨에 열대를 그리던 자신의 방은 밀림의 숲으로 재탄생시키고 물을 동경하는 친구의 방은 바다의 방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렇게 사진 콜라주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작가는 먼저 스토리를 만들고 이미지를 구상한다. 구상한 가상의 공간과 이미지들을 세상으로 나아가 한 컷 한 컷 찍어온다. 그리고는 컴퓨터에서 그들을 이어 붙인다. 기가 막히게 합성된 사진 작업은 그녀만의 새로운 공상의 스토리를 담아낸다.

1978년 일곱 살. 작가는 자신의 일곱 살 시절로 되돌아간다. 양파의 껍질처럼 겹겹이 싸여있던 과거의 기억을 꺼내어야만 했다. 그 트라우마를 스토리로 만들어 세상에 발설해야만 숨을 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보통사람들의마음을 평온하게 열리게 한다. 그로테스크한 괴팍함이 아닌 친절하게 미화된 정제된 이야기이다.

일곱 살의 어린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지하다. 그리고 많은 일들을 기억한다.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엄마를 찾기 위해 돼지 저금통을 깨고 항해를 떠난다. 엄마를 찾으면 돌아오리라 신발을 벗어놓고 가는 길에 빨간 끈을 묶어둔다. 낯선 마을. 자신을 반기지 않는 낯선 놀이터를 만난다. 바다가 있는 엄마의 고향 마을을 가본다.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를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을 듯하다. 문득 이불에 오줌을 많이 싸서 엄마가 떠난 것만 같았다. 아이는 빨래를 시작한다.

500장의 사진들을 합성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일 년에 한 에피소드 열 개의 작품만을 제작한다. 콜라주라는 사진합성작업이 노동집약적인 프로세스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더없이 치밀하게 스토리텔링을 하고 드로잉을 하기에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할 틈이 없다. 벌써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구상하고 있다. 자신이 구상한 에피소드에 들어가 있는 인물들을 스케치하고 현실에서 그들을 사진으로 찍는 작업까지 어느 한 가지 이미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남의 손을 빌리는 일이 없다. 요즘 들어 작가는 동물을 등장시킨다. 만남의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최근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은 근일 내로 만나 듣기로 했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글 | 장신정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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