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2013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스톡홀름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 초청을 받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파올로 주카 감독과의 인터뷰는 이른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정란기: 부산에 어제 도착하셨다고 들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파올로 주카: 부산국제영화제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저희가 영화제를 둘러보고 너무도 놀란 것이 있습니다. 올여름에 갔던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부산영화제에 참여하는 층들은 젊고 활기에 차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영화계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어제 사 먹은 호떡입니다. 너무 맛있었고, 오늘 또 사먹으려고 합니다. (웃음)

정란기: 2009년에는 단편 <L’arbitro>로 뉴이탈리아영화예술제에 참여해 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먼저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무척 인상적인 영화였는데, 그 단편이 장편영화로 만들어져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파올로 주카: 저 역시 놀랍고 기쁠 뿐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행운아라는 생각이 드네요. <L’arbitro>는 단편으로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2009년에는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다비드 디 도나텔로(David di Donatello)’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클레르몽페랑(Clermont Ferrand)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이후 아르헨티나의 제작사에서 관심을 보여 장편으로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개봉되어 제법 흥행도 되었으니 즐거운 일이죠.

정란기: 이번에 소개되는 영화 <레프리>는 축구 심판을 뜻하는 제목 탓에 스포츠 코믹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영화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파올로 주카: 저는 이탈리아 영화들이 흔히 다루는 마피아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택한 것이 축구였습니다. 저는 양을 두고 벌어지는 친족 간의 혈투와 축구를 통해 도덕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주요 장르는 코미디이지만, 미학적으로는 서사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면도 있습니다. 코믹한 부분들은 안드레아 구에라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요. 흑백 촬영으로 추상적이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풍자적 희극을 추구했습니다. 실력이 형편없고 볼품없는 몸을 가진 축구선수들이 보여주는 장면은 슬로우 모션으로 그로테스크적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코믹하게 표현하려고 한 거지요. 영화가 축구계를 반영한다거나,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다고 인식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정란기: 영화의 배경이 사르데냐 섬이던데, 연고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실례가 되는 질문이지만, 첫 데뷔 장편영화로는 좀 늦은 편이 아닌가요?
파올로 주카: 네. 저는 1972년 사르데냐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로마와 사르데냐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 관련 일들이 로마에 집중되어 있어서, 사르데냐에만 있을 수는 없지요. 제가 데뷔가 늦었다고요? 관점의 차이겠는데요,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영화 관련 일을 10년 정도 해왔습니다. 원래 문학을 전공했고, 주로 시나리오와 아동극에 관심을 많이 두었지요. 2002년에 첫 단편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이탈리아에서는 행운이랍니다.

정란기: 한국에서는 영화인들이 생활하기가 어려워 영화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탈리아는 어떤가요? 감독님에게도 그런 역경이 있으셨나요?
파올로 주카: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에서 20~30대 초반의 젊은 감독들이 장편영화를 만들고 더 이상의 활동을 못 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탄생시키는 것은 굉장한 일인데, 시나리오부터 시작해 여러 분야의 경험을 많이 쌓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개인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 역시 먹고살기 위해 텔레비전 광고를 많이 만들었고(사실 이게 주 수입원이었습니다) 시나리오와 동화도 많이 썼으며, 단편, 다큐멘터리 등 영상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을 했습니다. 초기 단편영화의 제작자는 제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저의 멋진 버팀목이죠.

정란기: 시나리오와 동화까지 쓰셨다니, 이탈리아 영화계에서는 1인 3~4역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난니 모레티의 경우에는 연기, 제작까지 하고 파올로 소렌티노는 소설가로도 유명한 거 같은데, 감독님도 나중에 작가로 데뷔하실 생각도 있으세요? 글을 쓰시면 한국에서 출간하시는 건 어떠세요?
파올로 주카: 하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사실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글 쓰는 일에는 늘 관심이 있고, 그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난니 모레티,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들은 천재죠! 제가 그분들만큼 되려면 노력해야겠지요. 난니 모레티 감독이 축구를 좋아하니까 제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란기: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이탈리아 감독은 누구신지요?
파올로 주카: 저는 코미디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코미디의 대부 격인 모니첼리를 존경합니다. 그리고 펠리니의 영화들을 아주 좋아하고요. 그래서 저의 단편영화 가운데 <광대의 진심>은 펠리니 감독의 <광대>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란기: 부산국제영화제 후 서울에서 개최되는 뉴이탈리아영화예술제에서 장편과 단편들이 상영된다고 들었는데,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파올로 주카: 제 영화를 봐주시는 관객분들에게 직접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레프리>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심판은 혼자다. 트레이너는 맹인이다. 사랑은 없다.”입니다. 영화를 보시면 이해가 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부디 이 영화와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한없이 자상하고 선해 보이는 주카 부부와의 만남은 시종일관 유쾌한 시간이었다. 이들 부부의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현재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Bella di Notte>의 촬영이 끝난 후 또 한 번의 인터뷰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이탈치네마 www.italcinema.com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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