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뉴욕의 봄은 한국의 봄보다 변덕스럽다.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반소매에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나선다. CNN에서는 연일 북한의 도발에 관해 보도한다. 오히려 한국이 북한의 도발에 무심한듯 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오바마는 중국개방을 이루어낸 제2의 닉슨이 되어 북한개방을 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는 소문도 떠돌아다닌다. 통일이 가까워져 오는 것인가?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어 질풍노도의 회오리바람이 불어올지, 혼란의 시기를 넘어 멋들어진 한국으로 다시 태어날지 그저 조심스럽고 또 새로 불어오는 봄바람에 설렌다.
맨해튼에만 네 개의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거물급 작가들을 전속으로 몸을 불리고 있는 페이스 갤러리에서 뉴욕의 첼시 그리고 베이징에서 동시에 장 샤오강의 개인전을 오픈하였다. 장 샤오강의 그림 속에서 북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투여해본다. 그저 어설픈 공상을 해본다. 이 중국대가의 인물 작업을 보며 막연하기만 하고 그저 상상 속의 뿌연 북한 사람들을 연민하여 본다.
획일화되어버린 인물들. 뿌연 무채색에 감정이 삭제되어버린 듯한 그들의 표정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도 엄숙히 굳어있다. 박제된 사람들을 사진으로 또 한 번 박제하고 생명력을 스포이트로 뽑아내어 캡슐에 따로 보관한 후 다시 페인팅으로 옮겨 놓은듯한 느낌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 속에 박제해놓은 인물들을 통해 중국의 시대적 정체성을 표현한다.
1958년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태어난 장 샤오강은 어린 시절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향으로 그림 그리기가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17세가 되어서는 중국에서 유화로 최고수인 린링을 만나 그림의 기초를 익히고는 명문 미대인 쓰촨 미술대학에 입학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그 시기 중국에서는 러시아의 현실주의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풍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샤오강은 모더니즘적 화풍을 고집했으며 여러 번의 낙방 끝에 겨우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그의 뚝심은 젊은 시기에 미술계에서 외면당하는 소외를 맛보게 하였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광기와 혼란의 시기를 거쳐 끝내는 자신만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에게 매료되었고 그의 중국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오래된 가족사진을 보며 실마리를 잡아낸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개성과 감정이 배제된 체 우두커니 근엄한 자세로 샤오강을 바라본다.
혼이 빠져나간 듯한 사람들의 슬픈 듯 초롱이는 눈은 우리를 직시한다. 겪어내어야만 하는 살아가야만 하는 선택할 수 없는 억압과 규율 속에서 군림당하여진 그들이지만 그들의 눈은 갈망한다. 무언으로 아우성친다. 흑백의 몽환적 이미지 사이에 낡은 사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얼룩들 붉은 선의 갈라짐 들은 보는 이를 아리게 한다. 상처를 표현한듯하기도 어둠 속에 살포시 새어 들어오는 빛을 표현한듯하기도 선혈의 붉은 피를 표현한듯하기도… 그는 격정의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고뇌와 애환을 절제된 감성으로 담아낸다.
장 샤오강은 1960~70년대에 걸친 문화혁명과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아방가르드 운동, 1990년 정치적 팝과 냉소적 사실주의, 그 이후 다원주의에 이르는 과정을 몸소 경험하면서 자신의 예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자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단순하고도 여린 듯, 아련하고도 강렬한 이미지로 자신만의 감성과 철학적 사유들을 담아 표현해내었다.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뉴스거리들이 아닌 개인들의 섬세한 심리를 표현해내어 국제 미술시장에 열풍을 일으켰다.
글 | 장신정
아츠앤컬쳐 뉴욕특파원, 전시 & 프로그램 기획. NYU 예술경영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