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Philippe 루이필립
Louis Philippe 루이필립

 

[아츠앤컬쳐] <루이 필립 스타일> 특유의 심플함과 무난함은 시대를 초월한 인기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19세기 전반, 루이 필립 집권기인 1830년부터 1848년까지로 제작 시기를 구분할 수 있는데, 21세기인 오늘에도 현대적인 느낌으로 애호가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프랑스 가구이다. 무엇보다 당시의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실용성과 안락함이 강조되었다. 또한, 견고하고 튼튼한 가구로 소문난 덕에 지금까지도 큰 어려움 없이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며 지나치게 무른 가구라고 비평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가구의 간소화는 당시 파리의 아파트 내부 면적의 축소화도 무관한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 층이 확대되면서 다수의 부유층은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을 생략한 실용성을 추구한 가구를 선호했으며, 이는 그들의 경제력 신장으로 인한 잦은 이사와도 관계가 있다. 당시의 산업화에 따른 신흥부르주아 계급의 눈부신 성장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낳기도 했다.

Grand Trianon, Salon de la famille de Louis Philippe 베르사유 궁전의 그랑 트리아농, 루이필립 가족 살롱
Grand Trianon, Salon de la famille de Louis Philippe 베르사유 궁전의 그랑 트리아농, 루이필립 가족 살롱

 

그렇다면 루이 필립은 누구인가? 루이 필리프라고도 발음하는 이 프랑스 왕의 본명은 루이 필립 도를레앙(Louis-Philippe d’Orléans, 1773~1850)이다. ‘시민들의 왕’으로 불렸던 루이 필립은 문화예술에 남다른 관심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왕가의 타이틀인 <루이 필립>이라는 레이블을 남겼다.

무엇보다 1830년 혁명 후 하원 위원을 비롯한 국민들의 지지로 왕정에 오른 그는 자녀들을 일반 고등학교에 보내는 등 겸손하고 평범하게 처세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를 닮은 소위 튀지 않는 평범한 가구 양식이 지배적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후 1948년 혁명으로 인하여 왕권을 박탈당하였고 이후 나폴레옹 3세가 등장하였다.

Fauteuil de Louis Philippe, 루이 필립 소파
Fauteuil de Louis Philippe, 루이 필립 소파

 

중후함과 견고함
전체적으로 간략한 직선 라인으로 구성된 가구의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모서리를 둥글게 하여 부드러움을 가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테크닉은 ‘두씬느(Doucine)’라는 용어로 표현되는데, 위는 볼록하게 휘고 아랫부분은 안으로 휜 곡선 라인을 일컫는 것이다. 이 테크닉은 <루이 필립 스타일> 특유의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케트리(marqueterie)라 불리는 합판 장식을 활용한 격조 높은 가구의 생산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장식 무늬를 표현하는 선에는 주로 환한 톤의 원목을 사용하였다. 마치 어두운 바탕의 가구에 옅은 베이지색으로 장식 무늬를 그려 넣은 듯하여, 가구 전체의 심심하거나 무거운 느낌이 드는 단점을 보완하였다.

Commode Louis-Philippe 코모드
Commode Louis-Philippe 코모드

 

또한, 당시에 다소 퇴색되었던 적갈색의 마호가니 원목 가구가 재등장하여 복고의 바람을 일으켰다. 19세기의 전문가들은 이를 보고, 과거 왕실가구의 화려함에 대한 향수를 원인으로 해석하였다. 마호가니 원목은 견고하면서도 반지르르하게 윤택이 나서 당시 부르주아 고객들의 구미에 잘맞았다고 한다.

한편 마호가니 원목 중에서도 색이 짙고 약간 적포도주 빛깔이 도는 원목이 <루이 필립 스타일>에 주로 사용되었다면, 18세기에는 색이 옅으면서 약간 금발머리 톤의 마호가니 원목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이처럼 마호가니 원목은 통째로 조각하여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주로 합판 장식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고가의 자단이라고 불리는 원목은 럭셔리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반면에 호두나무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여 대량생산에까지 폭넓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검은 톤의 원목은 지속적으로 소비가 증가하여, 이후 <나폴레옹 3세 스타일>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책상용 소파인 ‘볼테르 소파(Fauteuil Voltaire)’는 19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주로 기업가 또는 금융가 출신의 당시 부유층의 주도 세력은 책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안락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이 드는 책상용 소파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등받이 부분이 직사각형으로 넓게 면적을 차지하면서 등받이의 끝 부분은 끝까지 내려오지 않고 허리 높이에서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팔걸이가 쿠션으로 보완되어서 실용성과 안락함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다리 부분은 비교적 높지 않으면서 곡선형식으로 조각되었으며, 끝에 바퀴를 달아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바퀴의 등장은 그 시절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전해온다.

Crapaud Louis Philippe크라포 소파
Crapaud Louis Philippe크라포 소파

 

침대는 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커튼형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침대를 배치하기 위하여, 침실 벽의 일부를 안쪽으로 뚫어서 별도의 공간을 아늑하게 마련하였다. 이 공간의 벽면은 벨벳이나 두꺼운 티슈를 활용하여 커버했다. 그 밖에도 서랍장의 기능을 지닌 코모드(commode)와 접이식 책상인 세크레테레아 아바탕(Secrétaire à abattant)이 대표적인 <루이 필립 스타일> 가구이다.

이처럼, 마호가니 원목과 자단 및 호두나무를 사용하여 직선 라인을 강조한 묵중한 느낌의 가구를 제작하였다. 장식적인 느낌을 배제한 코모드와 세크레테레아 아바탕은 널리 제작되어 요즘에도 매물이 많은 편이다. 마치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서랍장의 느낌과 유사한 코모드는 심플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어서 어느 공간에나 쉽게 배치할 수 있으며, 세크레테레아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책상 부분을 닫아 놓을 수 있어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가구의 윗면에 짙은 회색 톤의 대리석을 얹어서 실용성과 미적 효과를 보강한 점이 특징적이다.

<루이 필립 스타일>의 가구에서는 그 이전의 <엠파이어 스타일>에서 두드러졌던 금도금 청동장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열쇠로 잠가야 하는 부분도 열쇠 부분을 금속으로 처리하였지만, 결코 눈에 띄지 않게 제작하였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 파리예술경영대 EAC 출강
EAC 예술경영학 학·석 사 졸업, 소르본느대 Sorbonne 미술사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