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poléon III Style
[아츠앤컬쳐]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을 다르게 표현하면 <2nd 엠파이어 스타일>이라 한다. 그렇다면 나폴레옹도 아닌 나폴레옹 3세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군인 출신인 나폴레옹 1세는 1804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 최초의 황제로서 국가를 통치했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는 부르봉 왕가의 루이 필립 왕이 집권하면서 왕정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다시 국민들의 혁명 봉기로 왕정시대의 막이 내리고 공화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1848년 제2공화정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éon Bonaparte, 1808~1873)는 쿠데타를 통해 독재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1852년 국민투표를 거쳐 그를 황제 나폴레옹 3세라 칭하며 제2제정의 시대를 열었다.
한편,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 남작과 함께 파리의 도시개혁사업을 통하여 굽은 길을 직선화하고 도로를 넓혔으며, 녹지를 적극 조성하고 건축물의 모습을 현대화하여 오늘날 파리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근대화와 국제화의 바람으로 빠르게 변화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건축과 예술, 디자인도 다양성과 진보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나폴레옹 3세 스타일 가구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금융가를 중심으로 신흥부유층 세력은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들은 기존의 귀족들이 독점해왔던 문화 예술의 흐름을 타파하고 신흥부유층이 주도하는 트랜드를 형성하였다. 그들 자신의 성이나 아파트를 마치 왕실의 내부처럼 격조 높은 분위기로 꾸미고자 하였다. 이른바 최고의 금융가의 가문명을 딴 <로칠드 취향(goût Rothschild)>의 도래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수요의 빠른 증대는 가구산업의 대량생산화를 초래하였다. 기존의 수공 아틀리에형 생산구조에서 공장형 생산시스템으로 교체하면서, 분업화를 강화하여 효율적 생산을 도모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생산비를 절감하였다. 예를 들어, 금형에 청동을 녹여 부어 장식 부분을 제작하거나 금속에 은도금을 하는 기법을 통하여 가구생산방식을 산업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 디자인의 가구를 규격을 달리하여 시리즈로 생산하여 이윤을 높였다.
이에 가구디자이너들은 과거의 왕실가구 모델을 토대로 발전된 기술력을 동원해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을 창안하였다. 이처럼 과거의 왕실가구의 새 버전 외에도 독특한 디자인의 나폴레옹 3세 고유 스타일까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전문 앤틱가구 상들에 따르면,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을 크게 세 가지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루이 16세 가구를 비롯한 기존의 왕실 가구 스타일의 새로운 버전, 둘째는 왕실 가구 스타일에 부분적으로 창조적인 성격을 접목한 콤비네이션 가구, 셋째로 독창적인 나폴레옹 3세 가구를 들 수 있다.
과거의 왕실 가구 스타일을 기초로 한 가구들은 <네오-루이(Néo-Louis)>라고 칭한다. 이는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 가구를 진보된 기술력을 토대로 제작한 가구이다. 나폴레옹 3세 즉위 후 그는 베르사유궁전과 샹티이궁전을 네오-루이 스타일의 가구로 꾸몄다고 한다. 이에 1852년부터 1870년까지 네오-루이 가구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발전된 생산 기술력을 토대로 기존의 왕실가구와는 현격히 다른 마감처리나 이음새 등의 정확한 연결 등에서 과거의 수공가구와는 차별화되었다.
파스티슈 스타일 (Style Pastiche)
파스티슈(pastiche)는 프랑스어로 모방이라는 의미이다. 파스티슈 가구는 왕실가구의 새 버전과는 달리 기존의 왕실가구의 전통적인 형태에 디테일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쉽게 표현하면, 마치 오래된 어머니의 옷을 수선집에 가져다가 소매나 옷깃 또는 어깨 장식 부분만 교체하여 다소 튀는 느낌을 가미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예를 들어 루이 15세 스타일의 가구의 다리 부분의 곡선을 유난히 휘게 한다든지, 루이 16세 가구의 특징인 직선 다리의 굵기를 이상할 정도로 가늘게 하여 눈에 띄게 하였다. 또는 브론즈 장식 부분을 강화하여 다소 지나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장식을 강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대형 르네상스 스타일의 뷔페 장을 재해석하여 목재 조각 부분을 강조하여 마치 조각품이나 건축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였다.
콩피덩트, 그리고 엥디스크레트
산업화를 통한 왕실디자인 가구의 근대화 및 대량생산화와는 별도로 나폴레옹 3세 스타일 만의 독창적인 가구 생산도 병행되었다. 특히 의자와 소파 디자인에 두드러지는데, 그 특징은 독특한 곡선형 라인의 도입과 벨벳 커버의 사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콩피덩트(confident)’이라는 소파는 마치 반대 방향의 두 개의 소파를 하나로 합쳐서 등받이의 이음 부분을 에스 자로 합쳐 놓은 것과 같은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소파에 두 사람이 앉으면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반대방향을 보면서 비밀 얘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엥디스크레트(indiscret)’는 세 개의 소파를 원판에 하나로 합쳐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원형 모양의 소파의 가운데 부분을 높여서 등받이 부분을 올리고 이를 세 등분으로 나누었다고 보면 된다. 또한 ‘푸프(pouf)’라는 등받이가 없는 형태의 의자도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의 대표적인 가구이다. 푸프의 다리모양은 마치 노끈의 매듭을 연상하게끔 조각되어 있다.
참고로 루브르박물관 내부에 소재한 나폴레옹 3세 아파르망에 가면 이러한 가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금장식과 붉은 벨벳 소파들이 어우러져 당시의 화려한 인테리어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 파리예술경영대 EAC 출강
EAC 예술경영학 학·석 사 졸업, 소르본느대 Sorbonne 미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