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한국불교 태고종의 본산이다. 통일신라 889년(진성여왕 3)에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하고 반야사(般若寺)라 하였다. 고려말에 태고 보우가 크게 중창한 기록이 있으며, 임란에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고 1748년(영조 24)에 왕이 새 부지를 하사하여 절을 현 연세대 자리인 연희궁에서 옮기게 하고 봉원사 현판을 내려 이때부터 봉원사라 한다.
봉원사 영산재는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산재는 불기(佛紀) 약 2,600년전 인도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說)하실 때의 모습을 재현화한 것으로, 공연이 아닌 부처님전에 행하는 장엄한 불교의식이다.
의식 중에 음악, 무용 전통문화의 요소로서 불교 음악 범패에 맞추어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을 춘다. 여기에 삼현육각(三鉉六角), 호적, 취타 등의 각종 악기도 같이 연주한다. 올해는 6월 6일에 코로나 팬데믹을 잘 이겨내는 중에 ‘제34회 세계평화와 국가안녕을 위한 영산제’로 거행되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신도들이 찾아왔다.
봉원사는 영산재 외에 갑신정변(고종 21년, 1884년)과도 관계가 있다. 이동인(李東仁)은 봉원사에서 김옥균·서광범·박영효 등 개화파의 젊은이들을 깨우쳐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동인은 일본에 밀입국하여 일본어와 일본불교를 공부하고 창씨개명을 처음으로 했던 인물이다.
일본으로부터 거금을 지원받고 서구 신문물을 들여와 고종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개화를 받아들이도록 하며 무기와 선박 구입 등 온갖 분야에 간섭하였으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는데 일설에 의하면 암살되었다고 한다.
일본에 들어온 선진문물이 일본 그 자체인 양 친일에 극도로 치우쳤고, 조선 침략 세력인 일본에 세뇌되어 유학생들을 친일파로 만들었으며, 개화를 빙자하여 세력을 휘두르던 그의 행적으로 인해 그를 개화승이자 친일파라 말한다.
봉원사의 중요 유물에 이광사(대웅전), 정도전(명부전), 김정희(대방 안) 등이 쓴 편액이 있고, 또한 명부전에 당대 명필이었다지만 ‘매국노!’하면 떠오르는 구한말 이완용의 글씨로 된 주련이 있다.
편액을 쓴 정도전이 아래 이완용의 주련을 보고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일본에 넋이 나가서 고종에게 신문물과 일본 무기를 사야 한다고 속닥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살된 친일파 이동인을 보고 어떤 심정이 들지 짐작해 본다.
경내에는 수령 약 500년의 괴목이 있고, 절 뒤 안산의 봉수대 아래에 관세음보살의 영험담이 얽힌 관음바위가 있다.
글 |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