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얼마 전 8시간의 시차가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왔다. 비행시간은 무려 편도 13시간가량이었는데, 도착 후 시차에 적응할 즘 되니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는 스케줄이다 보니 1-2주간은 정신없이 수면 장애와 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 난감하였다. 시차증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해외 출장의 부작용 중 하나라지만, 매번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퍼포먼스가 망가지게 되니 이제는 시차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체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팬데믹의 여파가 완화되며 해외 출장 및 여행을 다녀오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시차증에 시달리는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시차증이 생기는 이유와 이를 완화할 방법에 대해 공유하려 한다.
시차증이라 함은, 자연적인 수면 주기를 방해하면서 여러 시간대(time zone)를 넘나드는 여행자들이 대부분 경험하는 현상이다. 시차 부적응으로 피로, 불면증, 두통, 소화장애 등 다양한 증상이 생기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 네트워크에 의해 조절되는 일주기 리듬의 붕괴에 있다.
우리 몸 안에는 ‘생체시계’라 불리는 뇌의 시상하부에 위치한 상완골핵이라는 부위가 있는데, 이곳을 통해 눈으로부터 시각 신호를 받아 외부 환경이 밝은지 어두운지에 대해 뇌에 신호를 보내 신체의 수면 주기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시간대를 가로질러 여행하면서 일상과 달라진 외부환경이 인식되면, 일주기 리듬 비동기화가 생겨 시차증의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역할도 뺄 수 없다. 기분과 수면 조절에 관여하는 세로토닌은 시차 적응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세로토닌은 트립토판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으로부터 합성되는 동시에 송과선에서는 멜라토닌 형성의 전구체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은 수면 주기 조절에 관여하는 핵심 물질로, 어두운 환경에서 분비되어 수면 촉진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시간대를 가로질러 여행할 때, 시간대 이동으로 인한 햇빛에 대한 노출의 변화는 뇌 안의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합성과 방출의 변동을 초래해 불면증과 피로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안타깝게도 시차증을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와 지속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은 있다. 우선 아침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암막 커튼 등의 사용을 자제해보자. 자연적인 햇빛에 노출되는 것은 신체 내의 생체 시계를 재설정하고 수면 주기를 개선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수면 일정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도록 노력해보고, 출국 혹은 입국에 앞서 며칠 동안 수면 일정을 목적지의 시간대에 점점 더 가깝게 옮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한, 카페인과 알코올을 섭취를 피함으로써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를 최소화하고, 탈수로 인한 시차증 증상의 악화를 줄이기 위해 충분한 양의 물을 마실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방법에도 회복이 쉽지 않다면, 수면 전 멜라토닌 보충제 섭취를 고려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멜라토닌은 수면 주기 조절을 돕는 신체 내 자연 물질로, 필요에 따른 용량과 용법으로 복용하면 생체 수면 리듬을 재설정하고 시차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국내에서 처방하는 멜라토닌의 경우 수면 유도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게 작용하는 서방형 제제인 반면, 여행 중 해외 드럭 스토어에서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멜라토닌은 서방형 약에 비해 잠이 빨리 깰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므로, 정확한 용량과 용법에 대해 잘 지도해줄 수 있는 의사의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글 | 김혜원
뉴로핏 (NEUROPHET) 메디컬 디렉터
신경과 전문의, 대한신경과학회 정회원
前 서울아산병원 임상강사, 지도전문의
방병원 뇌신경센터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