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에너지의 파동이 어우러진 공명의 장

박은진, 파동Ⅸ,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90×72.7㎝
박은진, 파동Ⅸ,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90×72.7㎝

 

[아츠앤컬쳐] 수많은 창이 겹쳐 있는 듯하다. 제각각의 빛을 품은 그 창들은 서로 다른 감정들을 드러내고 있다. 박은진의 그림은 내부에 갇혀 있던 무의식과 의식의 충돌을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작품마다 작가의 감정을 유추하게 되며, 그것은 다양한 색이 지닌 의미들을 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린 이나 보는 이의 서로 다른 인식은 색의 파동으로 공명을 일으켜 잠재적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박은진, 파동Ⅷ,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90×72.7㎝
박은진, 파동Ⅷ,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90×72.7㎝

박은진은 정신적 증상을 회화적 터치로 옮기고 있다. 다분히 즉발(卽發)적인 즉흥성의 흔적들이 지배적이지만, 나름의 질서와 운율이 수반되었다. 색으로 대변되는 음의 강약, 장단, 고저 또는 같거나 비슷한 색음(色音)들이 견고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화법의 기초는 자신이 겪은 정신적 증상이 기반한 것이다. 불안정한 심리적 감정이 지속되는 이인증(離人症)을 회화적 형식으로 자가 치유하는 과정인 셈이다. 실제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 과정에서 미술심리치료 과정을 전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은진, 파동Ⅰ,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3×130.3㎝
박은진, 파동Ⅰ,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3×130.3㎝

이인증(離人症)은 어느 순간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기로부터 분리 혹은 소외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자기 자신을 지각하는 데에 이상이 생긴 상태인 이인성 장애(Depersonalization disorder)를 경험하기도 한다. 지나친 스트레스에 반복적인 노출이 주요 원인이다. 이는 복잡해진 사회생활 또는 대인관계에 드러나는 다양한 문제들이 수반된다. 어쩌면 박은진의 그림은 현대인의 정신적 장애가 투영된 시대적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박은진, 파동Ⅱ,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3×130.3㎝
박은진, 파동Ⅱ,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3×130.3㎝

박은진의 그림은 다양한 상황 속에 남아 있는 여러 증상 혹은 기억의 잔재를 색과 면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파편화된 제각각의 기억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또 다른 환영들과 이어진다. 이렇게 떠오른 이미지들을 작가만의 개별화 과정을 통해 무질서 속의 조화를 연출해낸다. 각각의 기억을 대변하는 엉킴들은 어느 날의 유희나 슬픔, 불안, 공포, 기쁨, 행복의 감정들을 은유하고 있다.

박은진, 파동Ⅲ,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90×72.7㎝
박은진, 파동Ⅲ,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90×72.7㎝

작품의 제작과정은 간단하다. 스퀴지나 붓의 이동 흔적과 그것들이 겹쳐 이뤄지는 조화를 한 화면에 담은 것이다. 주로 그날의 감정과 에너지가 조형적 자양분이 된다. 매일 비슷한 일과가 반복되어도 매번 똑같은 오늘은 없듯, 그날그날의 감정이 이입된 붓 터치 역시 비슷한 듯 서로 다른 감정을 대신하고 있다. 덮어지고 뒤엉킨 색은 오늘이기도 하고, 어제 혹은 내일의 여러 시점을 기억할 수 있게 한다. 기억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은 색채의 향연으로 심리적 공명의 장을 만들어 낸다.

작품의 공통된 제목으로 파동이 등장한다. 이 단어엔 작가적 관심사가 함축되어 있다. 단순히 물결처럼 일렁이는 색채의 움직임을 넘어, 사회적인 현상으로 공감되는 심리적 충동이나 움직임을 그려내려는 의지에 가까울 것이다. 박 작가는 우연들이 겹치면 필연이 되듯, 흔적이 겹치며 사유를 만든다. 계획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것들이 우연히 겹치며 현재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박은진의 그림은 무한한 일상의 반복이 다양한 감정의 색으로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박은진의 개인전은 인사동의 갤러리인사아트에서 13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박은진(1981~) 작가는 동국대 미술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조형예술경영 전공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서 동국대 예술대학 대학원 서양화 전공의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미술치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2016 Affordable Art Fair(서울 DDP), 2015 청주국제아트페어 등에 참여했다. 또한 2016 별의 별잔치 분양分陽:The Box(서울 스페이스선), 2016 30인의 릴레이 복덕방, 그날에, 기억의 봄(스페이스선), 2017 야기된 경계들(서울정부청사갤러리), 하얀 색종이 자선 전시회(서울 리홀아트갤러리), 2019 나가사키가 마지막 피폭지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의 불 등대 모뉴먼트(일본 나가사키현미술관 현민갤러리) 등 여러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글 | 김윤섭
명지대 미술사 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아이프aif 미술경영연구소 대표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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