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wegmann-time-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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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 일을 해야 하는 평일의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흐른다. 오후 3시쯤 시계를 보면, 아직도 하루가 절반이나 남아 있는 것 같고 퇴근은 멀게만 느껴져 마음이 힘들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놀거나 쉬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몇 번 없는 휴가 기간도 언제나 너무 짧게 끝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이 시간의 왜곡은 단순한 착각이라고 하기 보다, 정교한 뇌의 인식과 감정적 처리 과정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시간 감각을 만들어내는 핵심은 뇌에 존재하는 ‘내부 시계’이다. 이 내부 시계는 기저핵과 전전두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기저핵은 운동을 조절하는 영역이면서 반복적인 신호를 세어 시간을 추정하는 데에도 관여한다. 전전두엽은 주의 집중을 담당하면서 이러한 신호를 해석해 지금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를 계산한다. 이러한 유기적 연결로 우리의 뇌는 실제로 시계 바늘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밀도와 주의의 흐름을 근거로 시간을 추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역할이 더해진다. 하루가 길게 느껴졌는지 짧게 느껴졌는지는 순간의 체감 뿐만 아니라 이후에 해마에 저장되는 기억의 양과 질에 달려 있다. 새로운 경험이나 강렬한 사건이 많으면 기억은 조밀해지고, 하루는 길게 느껴진다. 반대로 단조로운 일과를 반복하면 기억의 밀도가 낮아져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처럼 인식된다. 어린 시절의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아이는 매 순간이 새롭고 자극이 많아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체험을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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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역시 시간 감각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두려움이나 고통 같은 부정적 감정이 작용할 때에는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이 때, 뇌는 생존을 위해 순간순간의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기록하려 하며, 단위 시간당 정보량이 늘어난다. 그래서 교통사고나 위협 상황에서는 시간이 늘어진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반대로 즐겁고 몰입된 순간에는 정보가 효율적으로 처리되며 기억의 밀도가 낮아져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라는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신경과학적 사실인 것이다.

이러한 시간 감각의 왜곡은 질환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울증 환자는 시간이 정지한 듯 하루가 지나치게 길다고 호소한다. 만성 통증 환자 또한 고통의 순간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편도체와 통증 네트워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스마트폰 알림과 끊임없는 정보 자극이 우리의 내부 시계를 흔들어 놓는다. 짧고 강한 자극은 순간을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하루 전체를 돌아보면 남는 것이 없어 시간이 허무하게 흘러간 듯 느껴진다. 반대로 깊이 있는 몰입 활동은 순간은 짧게 지나가지만, 이후에는 풍부한 기억으로 남아 시간이 충실했다고 평가하게 된다.

결국 시간 감각은 단순한 물리적 흐름이 아니라 뇌의 인식, 감정, 기억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복합적 산물인 것이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간이 된다. 물리적 시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지만, 뇌가 만들어내는 주관적 시간은 언제나 개인마다 다르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독특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글 | 김혜원
뉴로핏 (NEUROPHET) 메디컬 디렉터
신경과 전문의, 대한신경과학회 정회원
前 서울아산병원 임상강사, 지도전문의
방병원 뇌신경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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